나는 브랜딩을 호텔에서 배웠다 - 정재형

_ㅅ 2024. 5. 6. 13:17

보통 이런 브랜딩이나 경제 관련한 책은 정말 잘 안읽는데 호텔을 워낙 안 가보기도 했고(에어비앤비로 남의 집 들리는걸 좋아함) 다른 사람은 어느 포인트에서 주목을 하나 궁금해서 읽어봤는데 생각보다 재밌게 읽었음.

마케팅에 관심있으면 한번쯤 읽어보면 괜찮은 책인듯 

 



P.7 오래된 대저택을 호텔로 바꾼 이곳의 거대한 문이 양옆으로 활짝 열렸다. 그와 동시에 농구선수 이상의 큰 키를 한 사람이 등장했다. 그는 겨울옷이 잔뜩 담겨 무게가 꽤 나가는 내 캐리어를 아무렇지 않게 어깨에들쳐 메고는 프런트 데스크로 나를 안내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호텔의 근엄함보다는 자유롭고 유쾌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게다가 특이한 점이 있었다. 보통은 빠른 체크인을 위해 프런트 데스크가 정문 혹은 주 출입구 바로 근처에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로비를 지나고 또 통로를 지나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만 프런트 데스크가 있었다. 은근히 매력 있는 발상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프런트 데스크 직원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보다 훨씬 부담이 덜했다. 또한 걸어가는 도중에 이 호텔에 와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둘러보며 대략적인 분위기를 파악할 수도 있었다

누구는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일에 열중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맥주잔을 든 채 함께 온 사람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호텔 특유의 격조 있는 느낌보단 상당히 자유로운 분위기였으며, 이는 흡사 동네 카페나 선술집에 온 듯했다. 투숙객들이 보통은 객실에 들어가면 공용 공간으로 잘 내려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는 데 완전 반대였다. 호텔 로비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내가 생각했 던 근엄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얼핏 보면 공유 오피스 같기도 했다. 체크인을 하면서 나는 직원에게 로비에 있는 사람 들이 모두 투숙객인지 물었다. "꼭 그렇진 않아요. 지역 주민들도 다 같이 쓰는 공간이죠. 일종의 공용 거실입니다. 우린 로비라고 부르지 않아요."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 호텔 덕분에 호텔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와장창 깨졌다. 이 호텔은 '혹스턴 파리 Hoxton Paris’ 였다. 1800년대에 지어진 대저택을 허물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이 호텔은 지역 주민들이 들어와 조깅을 하는 등 투숙객이 아닌 사람들과도 꾸준히 교류하며 호텔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호텔의 매력에 더 빠지게 된 요소가 하나 더 있었다.

P.85 호권핑 회장은 투숙객이 바다를 간접적으로 즐기며 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모든 객실에 별도 수영장을 두기로 결심했다. 대신 바깥에서는 안을 절대 들여다볼 수 없게 설계했다. 집보다 더 편안 한 곳을 만들기 위해서다. 호권핑 회장의 어머니가 팔십 평생 처음으로 옷을 다 벗고 수영하고 일광욕을 해봤다며 아들인 호권핑 회장에게 이야기했을 정도라고 한다.
~
창가에는 마음이 차분해지는 인센스(향)도 준비되어 있다. 풀 안에 몸을 담근 채 그 향을 느끼노라면 '그래, 이게 쉬는 거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게다가 향의 종류도 매일 바뀐다.


P.100 
혹은 '괜히 바꿨다가 오히려 지금보다 나빠지면 어떡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리브랜딩을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보통 우리가 브랜드를 한번 만들면 그래도 최소 2~3년은 바라보고 움직인다. 물론 5년 정도 내다 보고 브랜드를 이끌어갈 각오로 도전한다. 그러나 2~3년이 지나면 그새 수많은 경쟁 브랜드가 생겨날 테고, 계속해서 브랜드의 같은 모습만 보여주면 고객들은 슬슬 흥미를 잃고 떠나간다. 그럼 어떻게 될까?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가만히 있으면 배는 언젠가 가라앉는다.

P.108 
실제로 내가 두 번째 투숙을 할 때 야외 수영장 이용 시 수영장 근처 탈의실을 써야하는지, 객실에서 수영복을 입고가야 하는지 물 었을 때도 인상 깊은 답변을 들었다. 그는 "둘 다 상관없어요. 이 곳에서만큼은 자유로운 영혼이 되세요, 허허!"라고 말해 서로 유쾌하게 웃었다. 그 덕에 마음이 훨씬 편안해지면서 이 브랜드에 대한 여운이 짙어졌다. 실제로 후기를 살펴보면 '직원분이 너무 따뜻하게 반겨줘서 좋았어요, 직원분의 멘트 때문에 기분이 좋 았어요'라는 이야기가 많다. 매뉴얼에만 따르는 게 아닌 진심에서 나오는 환대가 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

P.129 그런데 요즘 스타벅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대개는 눈감고 매장 안으로 들어가면 내가 지금 어떤 지점의 카페에 있는지 모를 정도로 천편일률적인데, 지역 특성을 살려 고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주는 곳들이 늘고 있다. 한강 위에 둥둥 떠 있는 서울웨이브아트센터점, 28년간 방치되었던 경동극장 (1960년대 지어짐) 을 개조해 만든 경동1960점, 한옥의 형태와 좌식 문화가 적용된 경주대릉원점을 한번 지도에서 검색해보기 바란다.

P.140 신라스테이는 이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 그 덕에 한두 번 신라 스테이를 경험한 사람은 다른 지점에 갈 때도 호텔 선택에 실패 위험을 줄일 수 있고, 익숙한 공간이기에 ‘믿고' 갈 수 있다. 새로 운 공간에 또다시 적응하는 데에 많은 에너지를 쏟을 필요도 없다. 마치 스타벅스처럼 말이다.

P.142 그렇다면 신라스테이에는 어떤 시스템이 있을까? 이들은 스마터 스테이 콘셉트를 추구한다. 여행 중에 진짜 필요한 서비스와 시설에만 집중해 고객 편의를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운영함으로써 고객들이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경험을 하도록 총력을 다하는 것이다.


P.144 L7호텔은 지점별로 다양한 모습과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보이고 있으며, 그 안에는 지역 문화, 열린 커뮤니티, 직원들의 청바지 복장, 루프톱 시설과 같은 체계를 가지고 있다. 신라스테이는 어딜 가나 동일한 경험을 할 수 있으며 실패 없는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신라스테이에는 실용성과 합리성이라는 시스템이 존재하며, 오직 이 두 가지만으로 고객 편의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P.153 처음엔 어, 이게 뭐지?'라고 하다가 자세히 살펴보면 깊이 감동 할 수밖에 없다. 쿠폰 옆에 이런 문구가 작성되어 있다. '잠깐! 꼭 필요하신가요?' 그리고 그 옆으로 이 박스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이 박스에 있는 일회용 위생용품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을 경우 이 쿠폰을 프런트 데스크로 가져오면 커피 한 잔이나 시저샐러드 혹은 와인 한 잔으로 교환해준다는 내용이다.

P.157 이 외에도 장기투숙객들이 여행 도중 새로 구입한 물품들로 인해 캐리어의 짐이 많아져 퇴실할 때 옷을 버리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카푸치노호텔은 이를 버리지 않고 기부한다. 이를 위해 1층에
'옷 기부함'을 배치해두었다. 이 옷들은 한 트럭 분량이 차면 '옷 캔'이라는 비영리 단체에 전달한다. 하나의 특정 객실은 모두 리사이클링 제품으로만 디자인한 곳도 있다.

P.163 나의 제품과 서비스의 우월함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우리 것을 이용했을 때 상대방이 얻는 것을 먼저 전달해야 한다.
'우리 사과는 유기농이라 인체에 무해해요'가 아니라 '우리 아이의 아침을 건강하게 챙겨줄 수 있어요. 우린 유기농 사과거든요' 라고 말하며 '농약 걱정 없이 아이의 아침을 챙길 수 있다'는 이득을 먼저 짚어주는 것이다. 브랜드의 이미지가 선명해지는 것은 덤이다.

P.182 
◦ 내가 '오, 특이한데?'라고 했던 사람, 공간, 브랜드 리스트를 종이에 쭉 적어보자.
◦ 적었으면 그들이 어떤 조합으로 이뤄졌는지 살펴보자. 생각나지 않는 것은 과감히 패스하고 생각나는 것 먼저 적는 게 중요하다.
◦ 그렇게 어떤 조합으로 이뤄졌는지 감이 잡히기 시작하면 이번에는 나 자신에게 적용해보자.



P.229 체크인하는데 엽서와 펜, 그리고 호텔 주변 가이드북을 함께 준 다. 그래서 물어봤다. "이 엽서는 어디에 쓰는 건가요?" 돌아온 답은 이렇다. "잊힐 오늘을 기록하세요. 그리고 체크아웃하실 때 저희에게 주시면 1년 뒤에 댁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P.237 그래서 커피의 복잡하고 어려운 원두명과 산지를 앞세우지 않는 다. 대신 ‘영감’, ‘사색' '일탈', '몰입' 등으로 커피의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필요한 커피를 고르세요'라며 매장에서 안내를 돕는다. 그러면 사람들은 주문할 때부터 '나는 영감이 필요해!라고 말한다. 동행자는 “왜 영감이 필요해? 뭐 할 일 있어?" 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러 커피 중 ‘영감'을 골랐다고 해보자. 그러면 상세 설명이 이어진다. '굳어 있는 머리를 깨워주는 자스민 향이 팡 터질 거에요'라고 말이다. 실제로 그런 느낌이 나도록 직접 로스팅을 한다.
그리고 손님에게 음료와 디저트를 내줄 때는 '생각의 몰입을 돕는 커피'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인쇄물을 반드시 함께 건넨다. 


P.238 
◦ 고객들이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며 이야기할 만한 거리'가 당신의 브랜드나 공간에 있는가?


P.279 이게 다가 아니다. 이곳의 절정은 따로 있다. 바로 웰니스 프로그 램이다. 투숙객 한정으로 진행하는 각종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 인기가 상당하다. 네 가지가 넘는 요가 프로그램에 걷기 명상, 숙암 명상, 오늘의 명상, 호흡 명상 등 명상과 관련한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숙박 예약과 동시에 프로그램 예약도 할 수 있는데, 파크로쉬에 재방문하는 사람들은 죄다 이 프로그램을 신청한다. 체크인하는 당일에는 야외 수영장부터 사우나까지 즐 기고, 다음 날 아침에는 명상이나 요가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정말 호텔의 주장대로 속세에서 벗어나 숙면, 사색, 재충전의 시간을 원 없이 갖게 된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더없이 귀한 시간이다. 이렇게 완벽한 비일상을 경험하고 몸과 마음, 정신까지 깨끗이 한 다음 일상으로 돌아가면 지칠 때마다 이곳이 떠오르지 않을까?

P.288 여기서 힌트를 얻으면 한 발 더 발전시킬 수 있다. 집으로 돌아가 는 길에 들으라고 호텔 콘셉트에 부합하는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해줄 수 있다. 음악 못지않게 향 또한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래서 호텔의 색에 어울리는 시그니처 향이 있다면 그걸 작은 용기에 소분해 체크아웃할 때 '우리와 함께한 기억을 오래 간직하세요!' 라며 건네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P.296 미니바의 비싼 가격이 호텔 내 레스토랑이나 바를 이용하게 만든다고 한다. 쉽게 말해 '이 돈 주고 미니바에 있는 거 마실 바엔 차라리 진짜 바에 가는 게 낫겠다'라며 호텔 내의 바를 이용하는 것이다.

P.304 전시장에 와서 상담하고 만져보고 느껴보고 하는 시간은 길어야 고작 한 시간 내외다. 가구는 한 번 구매하면 최소 3년에서 5년 혹은 10년 이상도 사용하기에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무브먼트랩은 고민의 시간이 너무 짧은 상태에서 수백만 원을 결제해야 하는 것은 불완전 판매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잠시 만져보는 게 아니라 진짜 생활하듯이 사용할 수 있게 해줄 수는 없을까?' 그리고 이들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찾아냈다. 그건 바로 무브먼트랩의 가구와 소품들로 가득 채운 '스테이'를 만드는 것이다. 이름하여 '무브먼트스테이'다.

무브먼트스테이에 머물면 체크인하고 체크아웃까지 최대 21시간 동안 직접 가구를 사용해보며 농도 짙게 경험할 수 있다. 가구를 사지 않고 휴식의 목적으로 와도 이 스테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면 '아, 이런 브랜드도 있었구나'라며 가구 브랜드에 관심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