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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아, 발시려

 

발시려? 일루와봐. 넌 슬리퍼를 신은채로 내 발을 끌어당긴다. 그 감촉에 묘하게 간지러워 제 발을 탈탈 터는 시늉을 한다. 이제 봄 다 됐는데도? 알잖아 나 수족냉증인거. 응 알지. 그러곤 그새 내 발 위에 자기 발을 얹어놓는다. 무거워.

 

안 차가워?

안 차가워.

 

약간 질은 밥, 찬기에 어설프게 담은 반찬, 모서리가 다 타버린 계란후라이.

 

어차피 너가 요리산데 뭘.

나 없으면 어떡하게.

어쩌긴 뭘

뭘?

난 누구만큼 입맛이 까다롭진 않아서.

하, 참나

 

푸흐, 크크크

 

동시에 젓가락을 집고, 동시에 바보같은 웃음이 터진다. 넌 날 따라하는걸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애. 응 좋아해. 그래? 그래. 그러다 또 흐흐흐. 뭐가 그렇게 재밌다고.

 

가스렌지 불을 올린다. 딱딱딱 불붙는 소리. 왼발을 오른발 위에 얹는다. 식용유 두르고, 계란 톡 까서…

 

밥좀 잘 챙겨먹어. 아유 잔소리. 아니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밥은… 네 네 한국인은 밥심이죠. 알면서 그래. 미안 오늘도 아침은 같이 못 먹겠네, 밥은 해놨어. 계란후라이 언제까지 태울래? 몰라 몰라 저는 바쁜 월급쟁이랍니다. 일하는 방법밖에 모른다네요 위잉 위잉 치킹. 바보같은 로봇 흉내 그만. 네.

 

다녀와. 그리고 짧은 포옹. 응.

 

막상 내가 널 따라하려니 잘 모르겠어. 넌 어떻게 날 그렇게 쉽게 따라했을까? 습관대로 넣은 물에 질지 않은 평범한 밥. 양념이 이리저리 묻지않게 잘 담아놓은 반찬. 아!

 

계란후라이. 일부러 모서릴 태우려 오래 뒀더니 너보다 더 심각한 결과물이 나왔다. 완숙도 아니고 이정도면 완완숙이네.

 

 

발시려. 벌써 봄인데.

 

 

모서리가 타버린 계란후라이. 한입 먹으면 네 생각이 나. 그래서 이내 먹다 관둔다.

 

…발시려.

 

말은 빈 주방을 감돌다 사라진다.

 


23.4.3 밥을 주제로 한 짤막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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