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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밥상 - 안혜령

인스턴트 글과 대가리 아픈 일들의 연속으로 인해 책이라도 유기농으로 골라보자 해서 읽었으나
결과적으로 귀농드림을 더더욱 부추기게 된..

그리고 공동체 마을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서 신기했음.. 왜냐면 미국에서나 들어봤지 한국에선 별로 들어본적 없기때문.... 그리고 배경이 한국이라 그런가 좀.. 읽으면서 사이비틱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음 ㅋㅋ ㅠㅠ

무신론자로서 아쉬운점? ㅋㅋ 이라면...... 남에게 베풀고 봉사하고 나누고 하는 삶이 종교적인 마음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그게 그렇게...... 배신감이 들 수가 없음

사람이 사람에게 공감하고 가여움을 느끼고 공존하고 베풀고 하는것들은 그냥 인간의 기본적인 천성에서 나온다 생각하는데 그걸 종교없이는 못 베푸는 사람들??... 처럼 자기자신을 만드는것 같아서 별로임. 마치 체벌없이는 곧은 인간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마주할때의 기분(이런 이야기하면 말 안통하는 점도 똑같음)

그리고 어떻게 보면 그들에겐 포교라는 목적이 있으니.. 자신이 종교가 있다는걸 까고 말하는게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난 그냥 뭔가 싶음.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건 아니지만 그런 삶을 추구하고 싶지는 않음

종교이야기가 과해졌는데 책 자체는 좋았음.. 왜냐면 난 언제나 귀농의 꿈을 꾸고 있기 때문에.......



 여는 글

"먹는 법은 사는 법이다."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이라는 책에서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나 는 막 시골에 집을 마련하고 서울을 오가며 텃밭농사를 짓고 있었다. 난생 처음 농사를 지으면서 겪은 구구한 사연들을 늘어놓을 자리는 아니나 한 가지는 말하고 싶다.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는 것. 농사를 지으면 서 처음으로 나는 사람이 자연 안의 한 생명체임을 실감했다. 만물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자연의 질서에 눈을 뜨고 그 완벽함과 아름다움에 가슴이 벅차 눈물을 쏟기도 했으니, 머리로만 이해하던 삶을 몸으로 체험 함으로써 비로소 내 삶이 좀더 온전해짐을 느끼고 감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워낙이 천성이 둔하고 더딘 사람이라 쉬 떨쳐버리지 못하는 습대로 머릿속으로만 굴리고 있던 이 말이 진실임을 사무치게 깨닫게 된 것은 이 책에 소개된 여러 분들을 만나면서부터다.

이 분들은 모두 오래된 농부들이다. 자연농업을 하기도 하고 유기농사를 짓기도 하고, 산 속에 틀어박혀 살기도 하고 공동체를 이루기도 하는 등 사는 모양은 제각각이나 그 뿌리는 다르지 않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생명에 대한 사랑. 이 마음이 삶의 바탕을 이루고 있으니, 첨단 기술과 거대 자본의 힘을 업은 물질문명이 세계를 휩쓰는 오늘날에도 삶의 근본으로서의 농사를 우직스럽게 지키고 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 농사야말로 땅을 살림은 물론이요, 갈가리 헤쳐지고 찢긴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여 조화롭고 건강한 공동체를 살리는 길이라 믿는다. 그 지극한 마음을 나날의 생활에서 두루 실천하고 있으니, 대표적인 것이 밥상이다.
이들은 제 손으로 농사지은 것과 집 주위의 산과 들, 바다에서 나는 것들로 양식을 삼는다. 사철 푸르른 채소와 과일을 원하지도 않거니와, 고기를 굳이 거부하지도 않지만 무시로 즐기지도 않아서 명절이나 잔칫날에나 상에 올린다. 한 발만 나서면 간편하게 다양하고 별난 갖은 음식을 얻을 수 있는 이 대단한 세계화 시대에 이들은 번거롭고 고루하게 몇 날 며칠 걸려 된장 담고 장아찌 만드는 수고를 마다지 않으며, 철철 이 나는 채소와 나물을 말리고 삶아 겨울을 난다. 집집이 형편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음식에 관한 한 시장에서 사는 것을 최소화하여 자급과 자립을 이룬다.
이들의 평범하고 조촐하나 건강한 밥상과 우리 전통 살림살이의 모습이 생생하니 살아 있는 음식문화는 사실 아직도 농촌에는 드물지 않게 남아 있다. 그러나 변산의 농부이자 시인인 박형진 씨는 "어촌 음식의 원형질이 깨어진 지 오래"라고 말한다. 농촌은 좀 나을까. 도시에서 나 어울릴 채소 차량이 마이크 달고 논둑 밭둑 누비고 다니는 풍경이 낯설지 않고, 웬만한 면소재지면 대형 마트 하나쯤은 자리잡고 앉았으니, 우리 농업이 생사의 길목에 서 있는 형편도 급박하거니와, 오랜 세월에 걸쳐 집집이 대물림해 오던 손맛과 입맛이 사라질 날도 머지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인스턴트 식품과 육식 위주의 밥상의 폐해는 다시 말할 것도 없고, 식품의 기업화가 나날이 세를 넓혀가고, 삶의 내용과는 무관한 웰빙 바람으로 유기농마저 상업화하고 있는 현상들이 염려스러운 것은 그 반 생명적인 가치관과 행태 때문이다. 임락경 목사가 "잘 먹고 잘사는 법" 이라는 소리는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뜻이 여기에 있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 계산되고 자고 깨면 소비를 조장하는 이 진저리나는 물신주의의 뿌리는, 자연을 유기체로서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고 인간 중심으로 보는 편협함과 오만함이다. 장자는 "도는 똥오줌에도 있다"고 했다. 생태학적 관점으로 보면 밥이나 똥이나 동등한 한 가치임을 명쾌하게 역설했으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눈이다. 자연계의 한 구성원으로서 사람의 불완전성을 받아들이고 다른 뭇 생명들과 조화롭게 어우러지고자 하는 겸허한 마음이다.
이 책에 소개된 분들 밥상에는 바로 이 마음이 담겼다. 이 마음을 도사인 양 저 혼자 꿰차고 앉은 것이 아니라 이웃과 마땅히 나누어야 한다고 여기며 실천한다. 그러므로 이들의 밥상에는 욕심이 없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휘둘리고 있는 물질에 대한 욕망이 없다. 남이야 어찌 되든 저 혼자 배부르겠다는 이기주의가 없다. 땅이 죽고 물이 썩어도 당장 제 몸 하나, 제 입 하나 편하고 만족하면 좋다는 편의주의가 없다.
진도의 장금실 여사는 스스로를 "숨어 있듯 피어 있는 이름모를 꽃 한 송이"라 여긴다 하셨다. 번듯한 것 찾는 사람 눈에는 비껴가기 십상 이나 그 자체로 아름답고 고귀한 생명이며 다른 풀꽃들과 어우러져 더욱 큰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꽃 한 송이, 이 책에 나오는 모든 분들이 그 꽃 한 송이다.
참으로 귀한 가르침들을 받았다. 나 또한 시골살림을 꾸려가는 주부로서 음식에 관한 다양한 지혜들을 알게 된 것도 감사한 일이려니와 부끄럽게도, 밥상을 포함한 살림의 중요성을 새롭게 깨달았다. 아울러 이 분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정체 모를 욕망에 사로잡혀 끄달리던 지난 날의 상투성과 속물성이 낱낱이 눈에 뵈었으니, 이보다 더 큰 공부가 있을까. 다시 생각하면 뭘 해 먹는지는 중요치 않다. 제한된 삶에 어떤 마음을 내어야 이 온전한 자연에 합당한 한 존재가 될 수 있을지, 그 마음 을 내면 먹는 것은 절로 따라오지 싶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본디 <귀농통문>에 2003년 봄부터 2006 봄까지 실렸던 글들이다. 애초에 기획 의도는 귀농하려는 사람이나 갓 귀농한 이들을 위한 밥상 안내였다. 귀농의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가 시장 구조에 매이지 않는 삶임을 고려할 때 먹을거리를 제 손으로 길러 먹는 것은 자급을 위한 긴요한 길이 될 터인즉, 그들을 위해 오래된 농부의 밥상을 소개해 보이자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요리책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고, 밥상을 통해서 그 삶을, 덤으로 농사짓는 법까지도 엿볼 수 있을 게라는 욕심을 냈다.
그러나 연재 당시에 이미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의도가 참으로 무리라는 것을 깨달았으니, 먹는 법이든 사는 법이든 양 쪽으로 다 허술했다. 마지막 원고가 끝나고도 꼬박 한 해가 흘렀건만 바뀌었을지 모를 각 댁의 형편을 따로 더 알아보지도 못했고 원고도 크게 손보지 못했으니, 허술하기로는 이 책 또한 크게 다를 바 없다. 혹시라도 이 책에 소개된 분들께 폐를 끼치는 일이 일어난다면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있음을 밝힌다.
보잘 것 없는 원고들을 묶어 책으로 내기로 한 소나무 출판사, 말끔 하게 전체 틀을 짜고 허술한 대목을 바로잡고 손질하여 책 꼴을 갖추게 해준 이혜영 씨에게 감사드리며, 여의치 않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짬짬이 두메산골과 외진 바닷가를 돌며 사진을 찍어 주신 김성철 씨 덕택에 이 책이 훨씬 풍성하고 아름다워졌으니 고맙기 그지없다. 자원봉사자 들인 <귀농통문〉 편집위원들, 늘 부족한 취재비와 빠듯한 일정 탓에 지역을 묶어 한꺼번에 취재하러 몰려다니면서 함께 나누었던 고생과 즐거움이 새삼 그립다. 무엇보다 나이도 먹을 대로 먹은 마누라가 어느날 느닷없이 내뱉은 농부가 되고 싶다는 한 마디에 기꺼이 길을 함께 해준 남편과, 매사 어수룩한 사람을 늘 따뜻이 응원해 주는 두 딸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여기 소개된 분들의 소박하고 건강한 밥상에 담긴 뜻이, 그이들의 맑고 진정한 삶이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바로 전해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2007년 새해 맞는 겨울 괴산에서


P. 15 이 푸성귀들은 모두 이 집 텃밭에서 자라는 것들이다. 맘 먹고 재배하는 왕고들빼기를 빼면 나머지는 한 번 씨 뿌려둔 채 굳이 돌보지 않아도 절로 잘 자란다. 부엌문만 나서면 지천인 이들을 손 가는 대로 뽑거나 뚝뚝 자르는데, “뭐든지 먹기 직전에 바로바로" 거두어 상에 올린다.

P.16 이렇듯 갖가지 푸성귀를 철따라 두루두루 먹으려면 무엇보다 "심기를 골고루" 해야 한다. 식물도 사람처럼 일대기가 있어 맛있는 때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야 일 년 내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지만, 예컨대 시금치 하나를 보더라도 비닐하우스 안에서 자라 연하고 부드럽지만 "밍밍한" 맛과 시린 땅 속에서 겨울을 나고 자라 좀 억 센 듯하나 달보드름한 맛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으랴. 제 철을 무시하고 자란 푸성귀에 대해서는 몸이나 입맛이나 전혀 "당기지를 않는다."

P.20 음식뿐이랴. 이들 보기에 사람은 "탐욕으로 찬 존재"인즉, 불가의 가르침으로 보자면 스스로 번뇌를 끌어안고 사는 셈이다. 그러므로 이 부부는 무수한 욕망을 다 떨구어 몸과 마음이 비면 참으로 자유로운 삶이라 여긴다. 마음이 이러할진대 이들 사는 모양새가 번듯할 리 없다. 이들 보기에는 세상에 따로 "더러운 게 없다". "원리를 따지면 근본이 다 같은데" 집이고 옷이고 굳이 빛내고 치장하려 애면글면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요란한 바깥세상 홈쳐보고 싶은 마음도 없어 구식 텔레비전 하나 있으되 안테나를 달지 않고 있다. 라디오 한 대면 족한 것을.

더 갖기를 원하지도 않거니와 있는 것 허투루 버리는 일도 없다. 이들이 오기 전 이곳에 살던 동광원 수녀들이 쓰던 걸레를 장금실 씨는 4년을 더 썼고, 찌글찌글한 양은 밥상 하나 물려받은 것을 20년째 탈없이 쓰고 있다. 모든 음식찌꺼기와 하다못해 푸성귀 씻고 데쳐낸 물까지도 고스란히 한데 모아 밭으로 내거나 십여 마리 있는 진돗개 밥으로 긴히 쓴다.

P.41 짚으로 물건을 만들자면 우선 새끼를 잘 꼬아야 하고, 새끼를 잘 꼬자면 무엇보다도 벗 짚이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볏짚이란 반드시 낫으로 베어 발 타작을 해서 얻은 것이어야 하니, 콤바인으로 수확하고 남은 짚은 길이도 짧고 이삭 부위가 상해서 그 짚으로 새끼를 꼬면 부실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 한목에 펼쳐진 것은 아니라지만 일곱 마지기라는 적지 않은 논농사를 이 부부는 손으로 모를 심고, 수확할 때면 낫으로 밑단까지 말끔하고 가지런하게 벼를 베고, 발 로 밟아 쓰는 탈곡기로 이삭을 터는, 요즘에는 보기 드문 고생을 사서 한다. "놉 쓸 사람도 없는" 시골 형편이기에 지난해에는 탈곡하는 데 부부가 꼬박 여드레를 매달렸다.

P.54 두 부부가 곧잘 나누는 얘기가 있다. “당신은 돼지로 태어나고 나는 쥐로 태어나 가지고 어찌 이리 땅 뒤지기를 하나”. 김제홍 씨는 돼지띠요 신응희 씨는 쥐띠인 것을 빗대어 농을 하곤 하니, "나는 쥐로 태어나서 땅 뒤지기를 할 팔자지만 당신은 돼지로 가만 들어앉았지 왜 땅 뒤지기를 하노".

P.71 가득 찬 밥상을 고추장 종지가 비집고 올라온다. 칙칙하다 싶을 만큼 색깔 짙은 고추장은 약간 텁텁한 듯하면서도 맵싸한데, 입 안에 남는 단 맛이 깔끔하다고 감탄하자, 전양순 씨는 물엿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 고 한다. 그대로 살짝 찍어 먹어도 맛있거니와, 밥상 끝머리에 나오는 쌀뜨물 넣고 끓인 누룽지에 특히 잘 어울린다.
고추장 만드는 법을 잠깐 소개하자. 찹쌀을 씻어 이십 일 동안 항아리에 담아 둔다. 찹쌀이 상하지 않을까 염려스러운데, 절대 안 상한다고 한다. 그 전에 콩하고 밀을 함께 섞어서 띄웠다가 말려 가루를 내 놓는 데, 이 가루하고 찹쌀 씻어놓은 것을 함께 옹기 시루에 쪄서 고두밥을 해서 담아놓으면 잘 삭는다. 여기에 소금물을 부어서 익반죽을 한다. 이 것을 항아리에 넣어 두면 발효되고 속성이 되면서 색이 좀 칙칙해진다고 한다. 그러나 맛은 기막힌 고추장이 되는데, 이 날 밥상에 3년 묵은 고추장이 오른 것이다.

P.86 사람만 생명이더냐, 땅도 풀도 벌레도 다 똑같은 한 생명이 아니더냐. 그의 '신바람 농법‘ 이 그래서 태어났다. 작물도 생명인 만큼 신바람 나게 즐겁게 대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밭 가운데에서 징과 꽹과리를 장단에 맞춰 두들기는 것이다. 애초에는 천둥번개가 치자 진딧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착안한 것인데, 실제로 진딧물도 많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다른 밭보다 작물들이 더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후로 부부가 틈틈이 밭에 들어가 한바탕 논다. 한 사람은 징을 치고 한 사람은 꽹과리를 두들겨주는데, 악기를 두들기다 보면 사람도 신바람이 나고 흥이 오를 것은 당연지사라, 한번은 신명난 강문필 씨가 고추 밭에 발가벗고 들어가 뒹굴면서 꽹과리를 쳐댄 일도 있다 한다.

P.140 무엇보다 부침개를 좋아하는 식구들 입맛을 돋우느라 일 년이면 댓병으로 스무 병쯤 사 쓰던 식용유를 끊었다. 대신 미강유로 바꿨다.

P.156 참깨가 되지 않는 추운 지방이라 들깨 농사를 많이 하는 탓에 깨가 들어가야 할 음식에는 어김없이 들깨를 쓴다고 한다.

P.170 임락경 씨는 발효의 원리란 "곰팡이를 먹는 것"이라 한다. 메주를 띄울 때 피는 곰팡이는 메주가 어느 정도 숙성되었는지를 알려 주는 신호다. 흔히 곰팡이는 네 종류로 나뉘는데, 흰 곰팡이가 해독제로서 가장 좋다. 메주에 노랑 곰팡이가 피었다면 이는 "메주가 춥다"는 뜻이다. 즉, 메주 띄우는 방 온도가 좀 낮다는 신호로 방 온도를 조금 높여 준다.
파랑은 "메주가 감기기가 있다"는 신호다. 썩 좋지 않다는 것인데, 다만 이게 흰 곰팡이와 섞이면 해독이 된다고 한다. 까만 곰팡이는 "독"이다. 메주가 썩은 것이다. 이건 버려야 한다.
그 자신도 "메주를 끼고 살다 보니" 이를 터득했다 하니, 요새 사람들이 이런 원리를 알 리가 없다. 어쩌다 된장에 흰 곰팡이가 끼었다고 반품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흰 곰팡이가 안 끼게 할 수도 있다. 알콜 처리를 하든지 방부제 처리를 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먹는 음식에 약품 처리를 한다는 것은 농약 안 뿌리고 화학비료 넣지 않고 평생 농사지어 온 사람으로서 할 짓이 못 된다. 발효식품이고 살아 있으니까 곰팡이도 피고 또 어쩌다 벌레가 나올 수도 있는데 이 사실을 모르니 질겁을 하고 상한 식품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된장에 흰 곰팡이가 마치 밀가루 뿌린 듯 곱게 끼면 뒤집어 꾹꾹 눌러 놓고 먹으면 되는데, 그는 그 부분을 걷어 찌개를 끓여 먹는다.

P.200 돼지고기 저장법으로 첫째, 새우젓에 재우는 방법이 있다. 새우젓과 돼지고기를 켜켜이 쌓으면 겨울에는 한 보름까지도 먹을 수 있는데, 물론 더 오래 두고 먹으려면 간을 더 세게 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효된 돼지고기는 부드럽기가 채소 못지않다고 하는데, 이 집에서는 특히 감자국 끓일 때 즐겨 넣어 먹는다. 옛날에는 된장으로 이렇게 돼지고기를 저장했다고 한다.
 두 번째는 훈제를 하는 것이다. 주로 쑥을 쓰는데, 모닥불을 피워 그 그을음 위에서 고기를 굽는다. 그러면 고온에 의해서 순간발효가 되면서 숙성이 되는데, "새콤하면서도 감칠맛이 난다"고 한다. 그 부드러운 맛을 점심밥상의 찌개에서 맛보았던지라 쉬 수긍이 간다. 생선도 대체로 이렇듯 훈제해서 먹곤 하는데, 안혜영 씨에 따르면 "한 번 구워 놓으면 생고기보다 세 배는 오래 가고, 다시 구워도 되므로" 저장하기에도 좋다.
 저장이 문제가 되니 장아찌나 절임류를 많이 하겠다 싶은데, 의외로 이 집 밥상에 장아찌류가 오르는 일은 흔치 않다. 그이 말로는 저장식품은 아무래도 짜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자연 그대로의 맛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크게 즐기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제철 음식이 너무 풍성하므로 그거 먹는 것만으로도" 촉하다. 물론 된장, 간장, 고추장 같은 기본 장류야 해마다 거르지 않고 담으며, 손님들이 곧잘 사오는 전어 따위로 젓갈을 담아 먹기도 하지만 저장식품을 위해 따로 시간을 낼 만큼 열을 내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