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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 양귀자

 

그때 그 시절 책이라고 하기엔 너무 시대를 앞서나간.. 정말 파격적인 책.. ㅋㅋㅋㅋㅋ 진짜 충격 그자체




p.5 (작가의 말) 어디서 어디까지가 멍 자국인지, 어디서 어디까지를 찍어야 상처의 증거가 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여성들에게로 가해지는 억압은 교묘하고 복합적이다.
 영혼을 찍는 카메라가 있다면, 짓눌리고 억압받는 정신을 촬영하고 인화할 수 있는 과학이 있다면, 렌즈를 들이대고 분명히 찍어두어야 할 고통받는 여성의 정신은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이런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일상적으로 이해되고, 그리하여 일상의 하나로 간주되는 삶은 분명 질이 나쁜 죄악의 삶이다.
 일상의 두터운 무감각을 깨기 위해 나는 '강민주'라는 한 여성을 등장시켰다. 그녀는 여성에게로 향해지는 일상적인 학대가 자연스럽게 은폐되고 이해되는 남성 중심의 이 사회를 공격하는 테러리스트다. 처음에 나는, 강민주로 하여금 남자들이 여자들을 상대로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모든 폭력을 그대로 남자들에게 적용시킬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나는 강민주에게 보다 너그러울 것을 요구했다. 폭력엔 폭력으로 대응한다는 논리는 남자들의 중심 논리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친 탓이었다. 강민주는 어쨌거나 그들과는 달라야 했다.
 그녀와 함께 있는 동안 나는 행복했다. 이 느낌은 글쓰기 작업에 있어 거의 처음 가져보는 것이었다. 

p.13 나는 나를 건설한다. 이것이 운명론자들의 비굴한 굴복과 내 태도가 다른 점이다.
 나는 운명을 거부한다. 절망의 텍스트는 그러므로 나의 것이 아니라 당신들의 것이다.

p.20 웃음을 거부하는 체질인데 비해 슬픔이나 분노를 수용하는 정신은 또 남다른 데가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다. 나는 이 세상이 아직 웃음의 차례가 아니라고 믿는다. 웃을 수 있는 고등동물이 인간이라지만 과연 그런가. 나는 인간의 웃음을 믿지 않는다.

p.35 기억이 났다. 키도 보통, 얼굴도 보통, 행동거지도 보통이어서 참말이지 보통 사람의 표본이구나 하는 평가를 내린 사람이었다. 옛 은사를 위해 점심을 사겠다는 것도 보통의 도덕성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 그 청년의 평이함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 생각으로는 더럽혀지고 비뚤어진 이 시대에 보통의 삶, 보통의 도덕성으로 살 수 있다는 것만도 굉장한 미덕이었다.

p.48 나는 여자들이 그렇게도 많이 남자들에게 당했으면서도 아직 남자에게 환상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소름이 끼치도록 싫다. 내가 선택한 이 운명 말고, 다른 운명의 남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들의 우매함은 정말 질색이다. 남자는 한 종(種)이다. 전혀 다른 남자란 종족은 이 지구상에 없다.

p.65 그렇다면 나는 겁이 나는가. 아니다. 그것도 아니다. 어머니는 세상이 무섭다고 했다. 범이나 사자보다 더 무섭고 질긴 것이 세상이라고 어머니는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어떤 것도 무섭지 않다. 어머니는 내가 세상에 상처 입을까 봐서 모든 준비를 해주고 떠났다. 어머니 생전에도 당신이 앞장서서 세상을 막아 주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도 두려움을 몰랐다.

p.84 언론이 즐겨 사용하는 말에 '사회 지도층 인사'라는 것이 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영 비위가 상한다. 단언하건대, 사회를 어지럽히는 인사는 있을지언정 사회를 지도하는 인사는 없다. 대단찮은 학식이나, 상업주의 언론에 이름을 팔은 헛 명성으로 자신을 지도층 인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나는 가장 혐오한다.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난다.
 그 누구도 어떤 다른 사람을 지도할 수 없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방식대로 살 뿐이다. 

p.145 대표적인 영화감독 일마즈 귀니에 대해서 알고 있으리라 믿소. <욜>이나 <양떼들>이나, <벽>을 구할 수 있다면 더 행운이겠지만."

p.258 우리가 연습하고 잇는 작품은, 아니,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백승하가 빠져들고 있는 대본은 외젠느 이오네스코의 초기작인 <수업>이었다.

p.321 공연은 마지막 대사를 발음할 때까지 중단할 수 없다. 마치 삶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