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한강 작가의 작품 도장깨기를 하고 있는데....
난 한강씨의 로맨스하고는 안 맞는듯 함. 전에 누군가 나에게 이 책이 자기가 읽었던 책 중에 최고라고 해서 기억에 남았었는데 그때도 이해를 못했다. 앞에 한 5페이지 읽고 접었었음
그리고 이제야 다시 시도해서 끝까지 읽어봤는데 여전히 내 취향은 아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음 한강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전부 맘에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역시 나는 노란장판 로맨스가 아니면 설레지 않는것인가???ㅜㅜ 이딴 개쓰레기 취향 어쩔건데
P.8 어느 곳에서건 사진은 찍지 않았다. 풍경들은 오직 내 눈동자 속 에만 기록되었다. 어차피 카메라로 담을 수 없는 소리와 냄새와 감촉 들은 귀와 코와 얼굴과 손에 낱낱이 새겨졌다. 아직 세계와 나 사이에 칼이 없었으니, 그것으로 그때엔 충분했다.
P.19 ....예를 들어 ‘사다' 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에 중간태를 쓰면, 무엇을 사서 결국 내가 가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다'라는 동사에 중간태를 쓰면, 무엇인가를 사랑해서 그것이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 됩니다. 영어에"kil himself”라는 표현이 있지요?
희랍어에서는 himself 없이 이 중간태를 사용해서 한 단어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라고 말하며 남자는 흑판에 쓴다.
흑판에 적힌 문자들을 곰곰이 올려다보다가 그녀는 연필을 쥔다.
공책에 그 단어를 옮겨적는다. 이렇게 규칙이 까다로운 언어를 그녀는 접해보지 못했다. 동사들은 주어의 격과 성과 수에 따라, 여러 단계를 가진 시제에 따라, 세 가지 태에 따라 일일이 형태를 바꾼다. 놀랍도록 정교하고 면밀한 규칙 덕분에 오히려 문장들은 간명하다. 주어를 굳이 쓸 필요도 없다. 어순을 지킬 필요조차 없다. 삼인칭의 한 남자가 주체이며, 언젠가 한번 일어난 일임을 나타내는 완료시제를 쓴, 중간대에 따라 변화된 이 한 단어에 '그는 언젠가 자신을 죽이려 한 적이 있다' 는 의미가 압축돼 있다.
P.45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귀신에 홀리는 일과 비슷하다는 것을 그 무렵 나는 처음으로 깨닫고 있었습니다. 새벽에 눈을 뜨기 전에 이미 당신의 얼굴은 내 눈꺼풀 안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눈꺼풀을 열면 당신은 천장으로, 옷장으로, 창유리로, 거리로, 먼 하늘로 순식간에 자리를 옮겨 어른거렸습니다. 어떤 죽은 사람의 혼령이라도 그토록 집요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 여름 밤 내 책상 옆의 작은 거울 속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어설픈 수화를 연습하는 내 상반신이 비쳐 있었지만, 거기 어른어른 겹쳐 있는 당신의 얼굴을 나는 매순간 알아보았습니다.
P.52 자라면서 그녀는 이 일화를 반복해 들었다. 고모들, 외사촌들, 오 지랖 넓은 이웃집 여자로부터. 하마터면 넌 못 태어날 뻔했지. 주문 처럼 그 문장이 반복되었다.
자신의 감정을 잘 읽을 수 없을 만큼 어린 나이였지만, 그녀는 그 문장이 품고 있는 섬뜩한 차가움을 분명하게 느꼈다. 그녀는 태어나지 못할 뻔했다. 세계는 그녀에게 당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캄캄한 암흑 속에서 수많은 변수들이 만나 우연히 허락된 가능성, 아슬아슬하게 잠시 부풀어오른 얇은 거품일 뿐이었다. 떠들썩 하고 웃음이 많은 손님들을 서름서름하게 배웅하고 난 저녁 무렵.
그녀는 툇마루에 쪼그려앉아 땅거미에 묻혀가는 마당을 지켜본 적 이 있었다. 최대한 숨을 죽이고 어깨를 웅크린 채, 그토록 얇고 거대한 한 꺼풀의 세계가 어둠에 삼켜지고 있다고 느꼈다.
P.55 시선만큼 즉각적이고 직관적인 접촉의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녀는 느꼈다.
P.56 이곳은 어느 쪽으로도
발을 내디디기 힘든 장소야.
사방이 어두침침해서,
무엇을 찾기도 힘든 곳일세.
P.65 간절히 구할수록 그것을 거꾸로 행하는 신이 있는 것처럼.
P.76 고백하자면, 학생들을 지켜보다보면 문득 부러워질 때가 있어. 우리처럼 인생과 언어와 문화가 두동강나본 적 없는 사람들만 가질 수 있을 어떤 확고함 같은 것이.
P.80 네 목소리론 네 얼굴을 만져줄 수 없는 모양이구나.
그러면 무엇이 너를 만져줄까. 아마 나는 절망을 느꼈던 것 같아.
P.80
가끔 생각해.
혈육이란 얼마나 이상한 것인지.
얼마나 이상한 방식으로 서글픈 것인지.
우리가 그토록 연하고 부서지기 쉬웠을 때, 지구 한쪽에서 반대쪽으로 옮겨다닐 때, 우리는 한 바구니에 담긴 두 개의 달걀, 같은 흙반죽에서 나온 두 개의 도자기 공 같았지. 네 찌푸린 얼굴, 우는 얼굴, 깔갈 웃는 얼굴 속에서 내 유년은 금이 가며, 부서지며, 가까스로 무사히 모아 붙여지며 흘러갔지.
P.90 더 견딜 수 없을 만큼 피로해지기 위해 걷는다. 이제 돌아가야 할 집의 정적을 느낄 수 없게 될 때까지, 검은 나무들과 검은 커튼과 검은 소파. 검은 레고 박스들에 눈길을 던질 힘이 남지 않을 때까지 걷는다. 격렬한 졸음에 취해, 씻지도 이불을 덮지도 않고 소파에 모로 누워 잠들 수 있을 때까지 걷는다. 설령 악몽을 꾸더라도 중간에 잠에서 깨지 않기 위해,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해 새벽까지 뜬눈으로 뒤척이지 않기 위해 걷는다. 그 생생한 새벽시간, 사금파리 같은 기억들을 끈덕지게 되불러 모으지 않기 위해 걷는다.
P.110 고백하자면 말이야 .... 내가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책을 내게 되 면, 그게 꼭 점자로 제작되었으면 좋겠어.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더듬어서, 끝까지 한 줄 한 줄 더듬어서 그 책을 읽어주면 좋겠어. 그건 정말 .... 뭐랄까, 정말 그 사람과 접촉하는 거잖아. 그렇지 않아?
P.122 아름다움은 오직 강렬한 것, 생생한 힘이어야 한다고.
삶이란 게, 결코 견디는 일이 되어선 안 된다고,
여기가 아닌 다른 세계를 꿈꾸는 건 죄악이라고.
그러니까, 너에게 아름다운 건 붐비는 거리였지.
햇빛이 끓어 넘치는 트램 정류장이었지.
세차게 뛰는 심장, 부풀어오르는 허파, 아직 따뜻한 입술,
그 입술을 누군가의 입술에 세차게 문지르는 거였지.
P.123
네가 나를 처음으로 껴안았을 때, 그 몸짓에 어린, 간절한, 숨길 수 없는 욕망을 느꼈을 때, 소름끼칠 만큼 명확하게 나는 깨달았던
것 같아.
인간의 몸은 슬픈 것이라는 걸. 오목한 곳, 부드러운 곳, 상처 입기 쉬운 곳으로 가득한 인간의 몸은. 팔뚝은. 겨드랑이는. 가슴은.
샅은. 누군가를 껴안도록, 껴안고 싶어지도록 태어난 그 몸은.
그 시절이 지나가기 전에 너를, 단 한 번이라도 으스러지게 마주 껴안았어야 했는데.
그것이 결코 나를 해치지 않았을 텐데.
나는 끝내 무너지지도, 죽지도 않았을 텐데.
P.151 .... 마침내 비행기가 인천 공항에 도착하고, 오랫동안 익혀 이젠 내 것이나 다름없어진 미소를 머금은 채 비행기를 빠져나왔지요.
누군가와 몸이 가까워질 때마다 실례합니다. 라고 독일어로 말하고 싶었어요.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짓고 싶었어요. 입국장을 빠져나온 순간 깨달았어요. 가족이며 친구들을 마중 나온 한국 사람들의 사이를, 어깨로 헤치며 나아가면서 ....... 이제야 내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이제 모르는 사람에겐 웃거나 인사하지 않는 문화 속으로 무사히 돌아왔다는 걸.
알 수 없었어요. 그 사실이 왜 그때, 그토록 뼈저린 고독감을 나에게 안겨주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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