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7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뱀이 휘감고 있는 지팡이' 이미지는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했다.
고대 의사들은 뱀이 휘감고 있는 지팡이를 의사의 특별한 상징으로 여겼으며, 이것을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 Rod of Asclepius'라 불렀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의학의 신으로서, 기원전 550년경, 히포크라테스보다 100년 전에 실존했던 인물이다. 의학 실력이 얼마나 출중했으면 신으로까지 추앙받게 되었는지 놀라울 정도다. 아스클레피오스는 항상 뱀이 휘감고 있는 지팡이를 들고 다니다 환자에게 들이밀어 놀란 환자가 자가 치유를 하도록 했다. 덕분에 이 지팡이가 의학의 상징이 된 것이다.
p.22 중국의 고대의학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고조선 이후 한사군 시대(기원전 108-313)다. 특히 중국과 밀접하게 문화 교류를 한 낙랑군을 통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순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후 우리나라의 한의학은 독자적인 발전을 했다. 선조의 임진왜란 당시 저술된 허준의 <동의보감>이 광해군 5년(1613)에 목활자본 25권으로 간행되었고, 이후 1724년에 일본판, 1763년에 중국판으로 편찬되었다. 2009년 7월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에 등재되기에 이르렀다.
국내에서 자생한 또 다른 한의학은 중국 의학과 달리 같은 병이라도 네 부류의 환자 체질에 따라 달리 치료해야 한다는 사상체질 의학이다. 사상체질 의학을 창시한 이제마(1837-1899)는 개개인의 보건, 영양, 생활 섭생, 예방 의학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체질 생리학과 병리학을 설정하여 한국의 독자적인 한의학을 태동시킨 바 있다.
우리나라 한의학에서 암이란 기와 혈이 흐르지 못하고 탁한 사기가 몸 안에서 딱딱히 뭉치는 것, 즉 음사내고된 것으로 본다. 그 원인은 정신적 불안으로 인체의 오행, 상생, 상극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인데, 그래서 암은 마음이 여리고 착하며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이 잘 걸린다고 했다.
p.26 일본의 고대 의학은 백제가 의술을 전파하면서 시작되었다. 459년 일본이 백제에 의사를 보내 달라고 요청하자 백제 개로왕은 고구려 출신의 명의인 덕래를 파견했다. 덕래는 일본에서 난파약사라는 칭호를 받는 등 고대 일본 의술의 시조가 되었는데, 난파약사란 당시에 나니와(현재의 오사카 시) 지역에서 활동하던 우리나라 의사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984년 일본의 단바노 야스요리(911-995)가 편찬한 <의심방>에는 백제와 신라의 의서인 <백제신집방>과 <신라법사방>의 처방이 인용되어 있는 등 삼국의 의학은 일본 고대 의학의 시초가 되었다.
p.29 한국인들이 근대 의료를 접하게 된 것은 1876년(고종 13) 2월 27일에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고 일본과 열강들에 나라 문을 열면서 부터다. 1885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병원인 제중원이 1899년에 국립의학교가 설립되었고, 1902년 최초의 근대식 면허 의사 19명이 탄생했다. 2차례에 걸쳐 17명의 졸업생을 더 배출한 국립의학교는 1907년 대한의원으로 통폐합되었고, 1923년에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의원으로 변경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이다. 1904년에는 미국 선교사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1859-1916)에 의해 세브란스병원이 세워지고, 1952년에는 한의사 제도가 국내에 정착되면서 한의과 대학이 설립되었다.
p.43 옛 사람들은 심한 상처를 입었거나 수술 또는 치료를 할 때면 끔찍한 통증을 덜어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갈구했을 것이다. 인류 최초의 진통제는 아마도 술이었을 것이다. 인도에서는 대마초와 독말풀에서 추출한 만드라고라, 중국에서는 아편인 양귀비나 해시시, 남아메리카에서는 코카나무 잎을 사용했으며, 술은 마취제로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p.53 아스클레피오스가 훌륭한 의사로서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했으면, 저승의 신 하데스가 인간의 사망률이 급감한다고 제우스에게 하소연하자 제우스가 번갯불로 아스클레피오스를 쳐 죽였다는 신화까지 있을 정도다. 의학 또는 의사를 뜻하는 단어인 aesculapian은 아스클레피오스에서 유래했으며, 그의 딸이자 위생의 여신인 히기에이아Hygieia는 위생과 청결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hygiene, 또 다른 딸이자 약학의 여신은 파나케이아Panacea는 만병통치약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panacea의 기원이 되었다.
p.57 히포크라테스가 처음 시도한 수술법 중 몇 가지는 현재까지 임상에 응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흉벽에 작은 구멍을 뚫고 고름을 배액할 튜브를 삽입하는 흉막염 치료법, 뼈 끝이 서로 닿도록 직선으로 정렬하는 골절 치료법, 빠진 관절은 뼈의 견인을 통해 제 위치로 정복 및 복구시키는 탈구된 관절 치료법 등이 있다.
p.79 최근에는 많이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동네마다 이발소가 있었고 그 입구에는 표시등이 세워져 있었다. 표시등은 빨간색, 파란색, 흰색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각각 동맥, 정맥, 붕대를 의미했다. 15-16세기의 유럽에서는 외과학이라는 별도의 의학 분야가 없었으며, 수술을 해야 하는 외과 의사의 역할은 천한 일로 치부되었다. 그래서인지 고대와 중세시대에는 이발사가 외과 의사 역할을 함께 했다.
p.84 런던 성토머스병원에 있던 윌리엄 체즐던이 쿠퍼선을 발견하면서 결석 쇄석술을 시도했다. 이를 계기로 해부외과가 설립되면서 1745년 마침내 이발사-외과의사조합에서 외과의사조합이 분리 독립되었고 두 집단의 업무가 분담되었다. 이것은 1540년 영국 의회에서 이발사-외과의사조합을 승인하고 2백여 년이 지난 후에야 이루어진 일이었다.
p.119 현대적인 의미의 콘돔은 16세기에 등장했다. 1490년경부터 유럽에 창궐한 매독 등 성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이탈리아 해부학자 가브리엘 팔로피우스(1523-1562)가 양과 염소 방광, 맹장의 박피를 이용해 최초의 콘돔을 만들었다.
1709년에는 영국 궁정 의사였던 콘돔 백작Earl of Condom이 방탕한 찰스 2세의 매독방지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어린 양의 맹장이나 장간막(두께 0.038mm)의 박피로 콘돔을 만들었는데, 그의 이름에서 콘돔의 명칭이 유래된 듯하다.
p.157 수술은 대로 종교적 목적을 가지고 실행되기도 했다. 그 대표적 예는 포경수술이다. 아브라함이 99세 때 여호와께서 다음과 같이 이르셨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 난 지 8일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창세기 17:10-14)이처럼 포경수술은 최초의 기독교적 수술이었다.
p.178 제너는 이를 통해 천연두 백신을 발명했으며, 백신주사는 많은 유럽 아이들을 구했다. 백신이라는 용어도 라틴어로 소를 뜻하는 vacca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소 백신주사를 맞은 여자는 소를 낳는다거나, 백신을 맞은 사람들은 신체 일부가 소같이 변한다는 신문 삽화들이 나돌았다고 한다.
p.181 루이 파스퇴르(1822-1895) 그는 오늘날 낙농업에서 제일 중요한 저온 살균법을 발명했고, 이어 탄저균과 당시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광견병 예방 백신을 발명했다. 좌우명이 "나는 일이 필요하다"였을 정도로 그는 모든 일에 열중했다.
p.191 사람이 정말 참기 어려운 통증은 자연분만 때 산모들의 산통, 요로 결석때 혈뇨와 옆구리 통증, 통풍성 관절염 때 엄지발가락의 염증성 통증, 그리고 치통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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