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7 의사인 나 역시 병원을 이용할 때 '아무것도 모르니 도와주세요' 하는 순진한 환자 역할을 했을 때 동정심을 살 수 있었고, 의사라는 걸 밝히지 않고 증상을 자세하게 설명하면 아는 척하는 건강염려증 환자로 최악의 취급을 받았다. 그런 경험을 한 이후로는 애초에 의사라는 것을 밝히고 진료를 받거나 아는 의사를 찾아가고 있다.
저자인 뒤센베리는 우리가 막연하게 '여자라서 내 말을 안 믿어 주는구나'라고 가지고 있던 의심이 실제적인 차별로 존재했음을 광범위한 전문가 인터뷰와 설문조사, 연구들을 통해 증명해낸다.
p.17 수십 년 동안 의학이 채택한 유일한 모델은 몸무게 70kg의 백인 남성에 맞춰져 있다. 가임기 여성은 임상 연구, 특히 신약 연구에서 아예 배제된다.
p.17 여성의 자가면역질환처럼 의료계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다른 사례를 찾기 위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내 친구에게 간단한 설문조사를 해본 결과, 다양한 건강 문제를 가진 여성들이 비슷하게 의료계에서 외면당하고 있었다. 그저 불안 증상이라며 한 달 동안 여러 의료진이 무시한 찌르는 듯한 가슴 통증은 심낭염이었다. 심낭염은 심장을 둘러싼 막에 염증이 생기는 질병으로, 심장마비와 비슷한 증상을 일으킨다. 산부인과 의사 두 명은 복통과 유레아플라즈마균 감염에 따른 실금을 스트레스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어지럽고, 기운이 없고, 이명이 들리며, 눈에 무언가가 떠다니는 듯한 증상을 호소한 친구에게 감염병 전문의는 치유사를 찾아가라고 권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뇌염의 일종)에 감염된 것이었다. 비슷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p.18 응급실에서 복통 치료를 받기까지 남성은 49분이 걸리지만, 여성은 65분을 기다려야 한다. 심장마비가 온 젊은 여성은 집으로 돌려보내질 확률이 7배나 더 높다.
p.38 현재 여성의 기대수명은 남성보다 4.8년 더 길지만 건강한 삶은 아니다. 여성은 남성보다 정신 건강과 육체 건강이 모두 더 나쁘고, 성인이 되면 남성보다 입원하는 기간이 더 길다. 마찬가지로 노년기도 여성은 남성보다 삶의 질이 떨어진다.
p.64 임신부를 시험 대상에 포함해도 아무런 혜택이 없고, 태아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연구 공동체는 임신부 집단을 모든 생의학 연구에서 배제해서 이들을 '의료계의 고아'로 전락시켰다.
p.69 여성은 항생제, 항우울제, 콜레스트롤 강하제 등 다양한 약으로 치명적인 부정맥을 일으킬 위험이 남성보다 크다. 베타 차단제는 남성보다 여성에 더 효과가 좋다. 우울증에 걸린 여성은 삼환계 항우울제보다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가 더 잘 듣는다. 남성은 여성과 반대다. 여성은 전신 마취에서 남성보다 빨리 회복하지만 부작용은 더 많이 겪는다.
p.78 하지만 흥미롭게도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추정, 즉 수컷 동물과 비교할 때 여성 호르몬 주기 때문에 암컷 동물이 선천적으로 더 큰 변동성을 보인다는 주장은 말 그대로 추정일 뿐이다. 거의 300편에 가까운 논문을 분석한 2014년의 메타분석을 보면, 암쥐의 변동성은 행동이나 형태적, 생리적, 분자적 특성에서 숫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몇 가지 특성에서는 숫쥐가 오히려 변동성이 더 높았다. 숫쥐를 집단으로 사육하면 무리 내에 서열을 두고 자주 싸우면서 스트레스 호르몬과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달리지기 때문이라고 과학자는 설명했다.
p.79 "통증 환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수컷 쥐만 연구해서 남성에게만 적용되는 결과를 도출한다면, 의무를 소홀히 하는 일이다."
p.83 "남성과 여성의 정상 기능의 차이와 질병에 대한 반응의 차이를 모든 의사에게 가르쳐야 한다. 전공 분야로 분리하는 방식은 잘못된 접근법이다."
p.89 만약 답이 없다면, '왜 답이 없습니까?'라고 다시 물어야 한다.
p.97 히스테리hysteria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자궁을 뜻하는 '히스테라hystera'에서 나왔다. 고대 그리스 의학이 하나의 특정 질병을 히스테리라고 불렀다는 주장은 현대 신화에 불과하지만, 초기 서양의학 문헌에는 자궁이 끊임없이 움직여서 월경통, 어지럼증, 마비, 질식할 것 같은 느낌 등의 다양한 신체적, 정신적 증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치료법은 자궁을 원래 위치인 골반으로 되돌리는 것이 목표였다. 자궁은 '사춘기가 지난 후, 너무 오랫동안 불임으로 남아 있으면' 특히나 몸속에서 돌아다니기 쉽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철학자 플라톤은 빨리 결혼하는 것이 권장할 만한 또 다른 치료법이라고 설명했다. 이후에 '자궁이 돌아다닐' 해부학적 가능성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지만, 의사들은 계속해서 자궁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증상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기원전 5세기에 히포크라테스가 쓴 의학 문헌에는 "자궁은 모든 질병의 근원이다"라는, 수천 년 동안 서양의학에 영향을 미친 가정이 간단하게 기술되어 있다.
중세 시대 동안 히스테리의 자궁 이론은 악마론에 자리를 내주었다. 이전에 자궁이 돌아다녀서 생긴다고 생각했던 질병들을 5~13세기에는 악마의 표식으로 여겼다. 역사학자 마크 미컬리Mark S. Micale는 "히스테리에 걸린 여성을 주문에 홀린 희생자로 동정하거나 악마의 영혼의 짝이라며 경멸했다"라고 기록했다. 처음에는 기도나 주문, 퇴마의식으로 치료했다. 하지만 중세 말기와 르네상스기에 마녀사냥이 대륙을 휩쓸면서 여성은 고문당하고 처형당했다. 17세기 초 영국 의사 에드워드 조던Edward Jorden은 유럽에서 과학혁명이 일어나면서 의사는 신비한 증상이 질병의 신호이며, "악마 탓으로 돌리지만 대부분 근본적인 진짜 원인이 있다"라고 말하며 의학적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고 기록한다.
의사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의학 문헌을 17세기에 부활시키면서, 모든 여성 질병의 원천은 자궁이라는 관점도 그대로 가져왔다. 저명한 영국 의사인 토머스 윌리스 Thomas Willis는 "언제든 여성의 몸에 특이한 병이 생기면... 그래서 질병의 원인이 보이지 않으면... 현재 우리는 자궁의 영향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그리고 모든 특이한 증상에 어느 정도 히스테리가 존재한닥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17세기가 끝날 무렵 윌리스를 포함한 몇몇 의사는 질병의 주된 원인을 우리 몸에서 새로 인식하게 된 신경계에 떠넘겼다. 윌리스는 뇌에서 빠져나온 '동물적 영혼'이 몸 전체를 돌아다니는 "신경계에서 주요 장애가 일어난다"라고 주장했다.
18세기가 되자 히스테리는 갈수록 더 다양한 종류의 '신경계 장애'로 취급받았다. 더는 자궁과 연결 짓지 않았고,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서 진단되었다. 하지만 "여성은 영혼의 구조가 더 불안하고, 소멸하기 쉽고 연약하며, 신경 조직이 더 부드럽고 상처 입기 쉬우며, 섬세하다."라고 한 영국 의사가 언급했듯이, 여전히 여성은 더 연약한 존재로 취급받았다. 히스테리는 여성의 질병으로 생각했기에 남성 히스테리 환자는 여성적이며 예민하고 때로는 동성애자로 여겨졌다. 의사는 신경질환을 앓는 남성 환자에게는 간단하게 다른 표식을 만들어 붙였다. 남성 히스테리 환자를 가르키는 말은 건강염려증, 망상, 울화 등이 있었다. 영국 의사인 토머스 시드넘Thomas Sydenham에 따르면, 히스테리와 건강염려증은 '달걀 두 개가 서로 똑같은 것처럼' 닮았다.
19세기에는 히스테리 이론과 치료법이 빠르게 확산되었지만, 결국 신경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주류 이론은 고대의 여성 생식기 이론과 결합했다. 한 의사는 "뇌 기능은 자궁과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서 자궁이 움직이는 단 하나의 과정만 가로막혀도 뇌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월경, 임신, 수유, 폐경 등 여성 생식 기능이 상대적으로 작은 여성의 뇌 에너지 대부분을 사용해버리기 때문에 여성은 선천적으로 신경장애에 걸리기 쉽다는 뜻이다.
19세기 중반에 출현한 부인과라는 새로운 전공 분야는 이런 생식기관을 탓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었지만, 역시 이러한 이론에 우호적이었다. 누군가는 '자궁이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기관'이라는 관점을 고수했고, 다른 이는 '난소가 여성의 모든 특징적인 몸과 마음을 구성'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신체 기관에 책임이 있든지 모험적인 의학이 지배한 상황에서 부인과 치료는 상당히 잔혹했다. 여성 환자는 거의 모든 증상에 대해 생식기관에 '한정된 치료'를 받았다. 이런 치료법에는 자궁에 다양한 혼합물을 주입하거나, 외음부에 거머리를 넣어 방혈하거나, 자궁경부 조직을 열로 파괴하는 방법 등이 동원되었다. 20세기가 될 때까지 미국에서만 약 15만건의 난소 적출술이 시행되었다. "골치가 아프거나, 엄청 많이 먹거나, 자위하거나, 자살 시도를 하거나, 성적인 기질이 강하거나, 피해망상증이 있거나, 단순히 고집이 세거나, 월경통이 심하다"라는 이유로 건강한 난소를 제거했다. 이런 유행은 의사가 여성을 불임으로 만드는 일을, 누군가의 말처럼 '여성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 전부를 파괴하는 자'가 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면서 끝이 났다.
19세기 말에는 또 다른 새 전공이 히스테리와 신경장애 치료법에서 부인과와 경쟁했다. 바로 신경과다. 초기 미국 신경과 전문의들은 부인과 치료법을 무시하면서 전기요법, 비소나 아편 등의 약물, 실라즈 위어 미첼Silas Weir Mitchell 박사의 악명 높은 '휴식 요법'등을 실험했다. 미첼 박사의 환자로 치료에 불만을 품었던 작가 샬럿 퍼킨스 길먼Charlotte Perkins Gilman은 자신의 유명한 단편 소설 <누런 벽지(The Yellow Wallpaper)>에서 미첼 박사의 휴식 요법에 대해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환자는 몇 주 동안 어두운 조명이 켜진 방 침대에 누워 의사와 간호사만 만날 수 있고, 살찌는 음식을 먹는 일과 편지를 받는 일 외에 독서나 글쓰기 등 다른 활동은 금지당한다. 이 치료법은 너무나 '쓰디쓴 약'이라 미첼 박사가 환자에게 치료가 끝나고 병이 나았다고 말했을 때, 환자는 미첼 박사의 말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도 있다.
'현대 신경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 과학자 장마르탱 샤르코Jean-Martin Charcot는 히스테리가 퇴행성 신경질환이라 히스테리 치료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1870년대에 샤르코는 대중강연을 여러 번 했는데, 히스테리 환자에게 최면을 걸어 환자의 몸이 기이하게 뒤틀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 다른 저명한 미국 신경학자인 조지 비어드George Beard는 남성의 신경증에 '신경쇠약'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건강염려증'은 점점 더 폭넓은 현대적인 의미를 갖게 되어서 이 단어는 히스테리 환자를 나타내는 데 적합하지 않았다.) 신경쇠약의 주요 증상은 피로감으로, 히스테리 증상과 폭넓게 중복되는 70여 가지의 다양한 증상을 동반한다. 점차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서 동일한 비율로 진단되기 시작했다. '여성의 본질에 내재해 있거나 후천적으로 습득한 근본적인 무엇' 때문에 여성은 여전히 신경장애에 취약하다고 여겨진 반면, 엘리트 남성은 같은 증상을 두고도 과중한 업무와 도시나 근대 산업 사회가 주는 스트레스로 신경쇠약이 생긴다고 여겼다.
히스테리의 자궁-신경 이론은 여성을 적합한 위치에 묶어두는데 특히나 유용했다. 자궁-신경 이론이 여성을 억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생식기관과 뇌 사이에서 위태롭게 균형을 잡는 일은 여성의 삶에 큰 궤적을 그렸다. 사춘기, 월경, 임신, 폐경의 과정은 모두 여성이 특히 정신적으로 힘겨운 활동을 할 때면 위험한 질병에 쉽게 걸릴 수 있는 '아픈 상태'로 생각했다. 그래서 미첼 박사는 "14~18세 사이의 소녀들이 자신의 건강을 세심하게 돌보지 못한다면 교육하지 않는 편이 낫다"라고 경고했다. 여성의 하버드 대학교 입학을 승인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한창일 때, 대학교수 였던 에드워드 클라크Ehward H. Clarke 박사는 <성별에 따른 교육(Sex in Education)>을 출판했다. 클라스 박사는 이 책에서 자신이 검토한 의학 문헌을 바탕으로 여성에게 고등교육을 시키면 여성의 자궁이 위축 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여성이 직업을 가지는 일에 대해 한 의사는 "여성 세균학자나 조직학자가 여성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약해지는' 시기에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생각하면 끔찍하다. 여성 외과의사가 같은 상태에서 수술하다가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는 상황은 말할 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여성의 생식 기능과 뇌 기능 사이의 승자 없는 줄다리기에 대한 과학적 사실은 명백하게 젊은 남성이 지배하는 의학계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애런라이크와 잉글리시는 "여성이 허약하다는 가설을 분명히 여성에게서 치료사의 자격을 박탈했다. 동시에 이 가설은 여성을 환자로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경제적인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의사들의 여성건강에 대한 우려는 19세기 말에 소수의 여성 의사가 의료계로 진입할 때까지 계속 커졌다. 메리 퍼트넘 자코비Mary Putnam Jacobi박사는 1895년에 은근슬쩍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백여 년 전이라면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요즘 여성의 건강 문제에 대한 설명이 쏟아지는 등 여성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특히 여성 환자가 수익성이 좋다는 새로운 기능 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기록했다.
물론 모든 여성이 돈이 되는 환자는 아니었다. 편리하게도 19세기 과학은 흑인여성과 노동자 계급의 백인 여성은 부유한 백인 여성이 쉽게 걸리는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놀라울 정도로 강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한 의사는 "남부에서 남편과 함께 고된 노동을 하는 아프리카계 흑인 여성과 북부에서 가사 노동에 힘겨운 브리지트는 비교적 자궁 질환에 대한 면역력이 있어서 대부분 건강하다"라고 지적했다. 시간과 돈이 많은 여성만 빈번하게 질병에 걸리고 의료적인 처치가 필요하다는 점은 새로운 의료 전문가에게는 얼마나 놀라운 행운인가. 그리고 세균학자, 조직학자, 외과의사 등의 의료 전문직에 발을 들이려는 여성은 노동의 결과로 지독한 병을 앓게 될 여성뿐이란 말인가.
19세기가 지나면서 히스테리와 여성 신경장애에 대한 의사들의 설명은 점점 더 의심과 불만으로 얼룩졌다. 부분적으로 의사들의 이런 태도는 여성들이 여성으로서 규정된 역할을 부정함으로써 건강 악화를 자초했다는 생각에서 비롯했다. 역사학자 앤 더글러스 우드Ann Douglas Wood는 "의사가 여성 질병에 대해 쓴 유명한 책의 기저에 깔린 '여성이 병에 걸리는 이유는 여성적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취지의 논리를 누군가가 발견한다. 여기서 여성적이지 않다는 뜻은 성적인 면에서 적극적이거나, 지적이며 야심이 있는 여성이거나, 여자답게 순종하지 않고 남을 위해 헌신하지 않는 여성을 가리킨다."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히스테리가 신체 질병이라고 확신한 미첼 박사도,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히스테리에 걸린 여성을 '스스로 만들어낸 근거없는 질병으로 자신의 필요에 따라 흡혈귀처럼 모든 건강하고 유용한 창조물의 피를 서서히 빨아먹는 질색인 환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히스테리에 걸린 여성은 주목받거나 동정을 받으려고 또는 가사 노동을 피하려고 자신의 증상을 속인다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한 영국 의사는 전형적인 히스테리 여성을 "실제로는 아무 문제없고 매우 건강하지만 사기 치려고 진짜 질병을 모방하는 것"이며 '수치심과 굴욕감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는 배우'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의사들이 부유한 만성질환 여성 환자를 돈줄로 보고 환영했겠지만, 사회는 의사가 실제로 환자의 병을 고치기를 기대했고, 결국 병이 낫지 않은 환자는 의사의 불명예로 남았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점점 많아졌다. 19세기를 거치면서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미생물학의 발전으로 의학 분야는 실험실의 결과를 환자의 증상과 연결하는 데 능숙해지고 있었다. 점차 모든 증상은 병리학으로 관찰과 측정이 가능하여 추적할 수 있다는 관점이 대두햇다. 이는 1880년대의 질병세균론이 받아들여진 이후 일어난 변혁이다. 전염병은 특정 미생물 때문에 발생한다는 발견은 모든 질병에는 특정 원인이 있으리라는 믿음을 더욱 크게 키웠다. 완전히 새로운 발상이었다. 이전까지는 질병을 증상의 집합으로 정의했다. '열'이나 '통증'은 질병의 범주에 하나의 항목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의학 역사가인 찰스 로젠버그Charles Rosenberg는 "명확하게 특정 기전에 따라 특징적인 임상 증상을 나타내는 질병이라는 현대적 개념은 19세기 발명품"이라고 기록했다.
이 전환은 의학이 증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냈다. 예전 의사들은 환자가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설명하는 말을 믿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몸속을 들여다볼 방법이 없었고, 대개는 질병의 원인에 대한 흐릿한 개념조차도 없었을 때라 의사는 환자의 말 외에는 판단할 근거가 없었다. 그러나 질병을 생리적 교란을 근거로 분류하자, 증상은 의사가 질병의 근원을 찾을 수 있는 단서로 바뀌었다. 의사가 20세기 초부터 실험 결과와 기술을 축적하면서 끊임없이 성장하는 첨단 과학의 도움으로 질병을 설명하고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원인을 찾으면서 통증, 어지러움, 메스꺼움 등 환자의 주관적인 증상 기록은 점차 '불평'으로 취급되었다.
이 같은 선상에서 히스테리 역사의 마지막 사건이 일어났다. 1800년대 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히스테리에 대한 신경학 이론을 포기하고 심리학 이론을 지지했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유명한 히스테리 여성 환자 사례 연구에서 심리적 충돌이나 '억압된 감정'이 신체 증상으로 '전환'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을 "정신은 놀랍게도 신체로 전이된다"라고 묘사한 프로이트는 처음엔 '무의식' 속에 깊이 억눌린 외상성 기억, 대개는 성적 학대에 대한 기억이 신체에 상징적인 방식으로 나타나면서 히스테리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나중에는 이 주장에서 한발 물러나서, 실제로 일어난 성적 학대가 아니라 관련 상상만으로도 히스테리 증상으로 바뀔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개발한 '자유 연상법'을 톻애 환자가의식적으로 심리적인 고통을 상기하면 증상이 사라진다고 프로이트는 믿었다. 이것이 바로 정신분석(psychoanalysis)이다. 역사가 캐럴 스미스 로젠버그Caroll Smith-Rosenberg는 정신분석을 '히스테리에 걸린 여성이 낳은 아이'라고 표현했다.
수세기 동안 히스테리를 다양한 신체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신체 질병으로 여겼다. 그러나 프로이트 시대 이후에는 신체 증상을 일으키는 정신장애로 받아들였다. 설명할 수 없는 여성의 질병을 방황하는 자궁이나 악마의 빙의에서 예민한 신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추적 끝에, 의학은 마침내 히스테리를 정신병으로 몰아넣었다. 이에 대해 에런 라이크와 잉글리시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프로이트의 영향 아래, 여성 본질을 해부할 메스가 결국 부인과에서 정신과로 넘어갔다. 여성을 바라보는 의학의 관점도 '신체질환'에서 '정신질환'으로 전환했다.
p.127 명확한 병명으로 진단될 때까지, 여성의 질병은 심인성이다.
p.128 심인성이라는 설명은 신체화 증상에 대해 의학적, 과학적 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틈새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슬쩍 끼어든다. 심인성이라는 설명은 이런 지식의 틈새를 계속 파고들면서, 이 틈을 실제 과학 지식으로 채워 넣어야 한다는 모든 필요성을 줄여 준다.
p.131 그러나 이러한 연구는 기능성 신체화 증후군 환자에게 아동기의 성적 학대나 어린 시절에 다른 스트레스가 있었을 확률이 높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심인성 요인을 암시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이런 현상은 여러 질병에서 흔한 일이다.
p.132 1986년 논문에서는 '히스테리'나 '기능성 장애'로 진단받은 환자 그룹을 관찰했는데, 나중에 심각한 기질성 신경장애를 발견했다. "히스테리 진단은 대부분 잘못되었다"라고 결론을 내린 논문의 저자들은 히스테리로 오진하기 쉬운 환자의 특징을 분류했다. 환자가 여성이거나, 이전에 정신장애를 진단받았거나, 심리적 설명이 그럴듯하게 들어맞거나, 자신의 증상을 과대 포장하는 경우였다. 저자들은 환자의 이런 특징은 의사가 환자의 말을 믿지 않으리라는 두려움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p.137 어린이의 수술 후 통증을 연구한 논문을 보면, 소녀보다는 소년에게 코데인을 더 많이 주었고, 소녀는 아세트아미노펜을 받았다(코데인은 준마약성 진통제로 아세트아미노펜보다 더 세다-옮긴이).
p.139 여성이 호소하는 통증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 대한 문화적 편견의 영향도 받는 것으로 보인다. 남성의 무던함은 남성의 통증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한다. 남성이 통증을 호소할 때는 거의 의심받지 않는데, 남성은 애초에 통증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성의 무던함이 여성의 통증을 가볍게 여겨도 된다는 합리적인 근거는 아니다.
p.163 심장질환을 앓는 중년 여성은 특히 간과되기 쉽다. 젊은 여성은 심장 질환에 걸리지 않는다는 고질적인 신화는 사라지지 않고 있는데, 연령에 따라 질병 발병률에 성, 젠더의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처음 심장마비를 겪는 시기가 남성은 보통 65세인 데 반해 여성은 72세로, 남성보다 여성이 더 노령인 경우가 많다. 75세가 될 때까지, 남성은 여성보다 심장마비를 겪을 확률이 훨씬 높다.
하지만 매년 55세 이하의 미국 여성 4만여 명이 심장마비로 입원하며, 약 1만 6천 명이 사망한다. 사실 심장질환은 모든 연령층에서 여성 사망률이 유방암보다 더 높다.
p.171 이는 심장마비의 증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증상은 교과서를 벗어나 더 다양하게 나타난다. 남성 연구를 통해 도출된 대표적인 증상은 극심한 가슴 통증과 왼쪽 팔을 타고 흐르는 통증으로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나이 지긋한 과체중인 백인 남성이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고 의자에 털썩 쓰러지듯 앉는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할리우드 심장마비'로 알려지면서 문화적인 인식 속에 스며들었다. 이 상황은 의학 교과서에도 수십 년 동안 그대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여성, 특히 폐경 전 여성이라면 심장마비가 왔을 때 '비전형적인 증상' 을 더 많이 보이며, 증상이 며칠에서 몇 주 동안 이어지기도 한다. 목, 목구멍, 어깨, 등 위쪽의 통증이나 체한 증상, 숨이 차는 증상, 메스꺼움이나 구토, 발한, 불안감, 눈앞이 깜깜해지는 증상, 어지럼증, 일상적이지 않은 피로감이나 불면증을 들 수 있다.
p.180 하지만 이 연구는 또 다른 걱정스러운 지점을 드러냈다. 몇몇 여성은 사실 심장마비를 일으켰다고 곧바로 인지했지만 더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렸다는 것이다. 만약 자기 생각이 틀렸을 경우 건강염려증 환자로 몰릴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소란을 피우기 싫고, '만약 별일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 바보 같아질까봐' 창피당하기 싫다는 인식이 여성들에게 널리 퍼져 있다."라고 토머스는 여성이 치료를 미루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주 심각한 증상을 겪는 와중에도 아마 별일 아닐 거라고 되뇐다."
p.210 발병 초기 단계에서 나타내는 질환 자체의 모호함과 숙련된 의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여성의 증상을 설명하다가 곤경에 빠진 의사가 쉽게 심인성이라는 설명을 끌어들이려 할 때, 자가면역질환을 앓는 많은 여성 환자들이 파편화된 의료체계를 헤매며 진단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심인성이라 명명한 올가미에 빠지는 일은 놀랍지 않다. "나는 내 의료 기록을 모두 모아서 가는 곳 어디에나 들고 다녔어요 그리고 모든 입원 기록과 진료 기록이 담긴 상세한 목록을 잘 보관했죠. 이 상황이 오래 지속될수록 누구도 나를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라고 재키는 말했다.
p.224 사실, 많은 여성 환자에게 진단명을 찾는 길고 힘든 탐색 여정은 흔한 레퍼토리다. 재키처럼 많은 여성 환자가 마침내 진단을 받으면, 그것이 어떤 진단이든지 엄청난 안도감을 느낀다. 왜 아픈지도 모른 채 병을 앓는 일은 고통스럽다. 왜 아픈지도 모른 채 병을 앓고 있는데 '아무 이상 없다'라는 말까지 들으면 고통은 가중된다.
p.227 그러나 갑상샘자극호르몬의 정상 농도는 쟁점이 되어왔다. 갑상샘자극호르몬 농도는 0.5~5.0mIU/L가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0.5mIU/L 이하는 갑상샘 기능항진증, 5~10mIU/L 사이면 경도 갑상샘 기능저하증, 10mIU/L 이상이면 명확한 갑상샘 기능저하증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2000년대 초에 발표된 논문은 갑상샘 문제가 없는 건강한 사람은 대부분 더 좁은 범위로 수렴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p.231 "피로감은 눈으로 볼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힘들어요.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얼마나 피곤한지 정말, 제대로 설명하기가 너무나 어렵죠. 의사도 이해하지 못해요. 누군가는 의심하죠. 의사조차도 환자 대부분을 그저 정신과 문제를 안고 있거나 투덜거리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을까 생각해요."
p.267 많은 여성들이 의사에게서 "아주 건강해 보이시네요!"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옷을 입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을 보고했다. 젊은 시절에, 자신의 통증을 진단해 줄 의사를 찾아다니던 투쟁 역시 어머니가 병원에 갈 때는 화장하지 말라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런 인식은 옳았다. 논문을 보면 의료진은 특히 여성에 대해서 '아름다운 것은 건강하다'라는 편견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다. 1996년 연구는 의료진이 '매력적인' 환자는 통증을 덜 느낀다고 인식한다는 사실을 드러냈고, 이런 편견은 여성 환자에게만 적용되었다.
p.304 공식적으로 진단받으려면 자궁내막증 병변을 확인하는 외과적 수술을 해야 한다. 즉, 자신의 증상이 단순히 '끔찍한 월경통'이 아니라고 의사를 설득해내야 한다는 것인데, 사실 이 일은 많은 여성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미국에서는 통증이 시작되고 진단받기까지 평균 10~12년이 걸린다. 그리고 환자의 60%가량은 20세 이전에 자궁내막증 때문에 통증이 시작된다.
p.315 자궁내막증을 가진 많은 환자들이 자신들이 임신하려고 노력할 때만 증상이 진지하게 다루어졌다고 보고했다. 2003년 논문을 보면 의사에게 불임을 호소한 여성은 월경통을 호소한 여성보다 더 빠르게 자궁내막증 진단을 받았다.
p.341 때로는 의사는 물론 환자들조차도 만성통증으로 노화에 따른 필연으로 생각한다. 골관절염을 앓는 노인 환자는 의사에게 "뭘 기대하십니까? 환자분은 그냥 늙어가는 겁니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p.347 어떤 통증이든 '아래쪽 그 부분'이면 얼마나 통증이 심각하든지 간에 월경통으로 치부하고, 성관계 중에 생기는 어떤 통증이든 와인 한 잔으로 완화하라고 한다면, 모든 질병에서 '오진 왕국'이 펼쳐진다.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은 자가 말할 때 - 클라아스 부쉬만 (0) | 2023.11.05 |
---|---|
정원의 쓸모 - 수 스튜어트 스미스 (1) | 2023.10.18 |
천년 그림 속 의학 이야기 - 이승구 (0) | 2023.10.18 |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 - 궈징 (1) | 2023.10.15 |
플루언트 - 조승연 (0) | 2023.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