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맨부커상 후보에 들었다고 해서.. 또 전부터 하도 여기저기서 제목은 많이 들어봐서 이참에 읽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 타고난 스토리텔러.. 전기수 아저씨 그자체 ㅅㅂ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생각보다 좀 존나 진지한 역사물일줄 알았는데 그것보단 그냥 스토리텔링 차력쇼를 보는 느낌이었음. 진짜 존나 골때림
그리고 한강의 채식주의자(이쪽은 당선작이지만)와 정말 거의 반대선상에 있는 느낌이었음 정말 여러모로 ㅋㅋㅋ
여성 캐릭터들이 많이 나오지만 그다지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없다는 점, 또 동시에 빠짐없이 그들을 성애화하고 창녀로 만든다는 점이.. 어... 그래.. 너 남자 작가지 어.. 그런 느낌
그리고 아마 이 책이 나왔던 시대를 봤을때... 그리고 이 작가의 배경상... 이 책의 흐름상..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중간에 약간 음? LGBT? 스러운 구간도 있어서 진짜 이게뭐지????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것도 그냥 존나 웃김ㅋㅋㅋ 소 뒷걸음치다 퀴어퍼레이드 입장한 느낌임
섹스장면이 너무 많고(진짜 정말 많음 주의) 징그럽기도 과하기도 한 부분이 많아서 호불호가 꽤 쎄게 갈릴 것 같긴 한데 이야기 풀어내는 그 능력은 정말.......... 어..... 기깔난다고 본다..
P.10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그것은 춘희와 같은 감방 안에 있던 한 여죄수의 말이었다.
P.41 춘희의 엄마, 금복의 세계라.
평대에 들어오기 전, 금복은 쌍둥이자매가 운영하던 술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어디론가 떠날 구실을 찾고 있었다. 당시 그녀는 스물다섯의 한창 나이였지만 이미 사내라면 신물이 날 만큼 충분히 겪은 후 였다. 그녀는 유난히 딱 벌어진 엉덩이를 제외하면 그다지 눈에 띄는 미인은 아니었으나 길 가던 사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들었는데, 그 이유는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어떤 냄새 때문이었다. 냄새이긴 냄새이되 구체적인 형태가 없는 냄새였기 때문에 길을 가다 금복을 한 번쯤 돌아본 사내들이, 자신이 맡은 그 냄새가 잘 익은 복숭아 냄새 였는지 시금털털한 탁배기 냄새였는지 또는 나무를 하다 뒤가 마려워 슬그머니 숨어들어간 숲속에서 맡은 더덕 냄새였는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별수 없이 그저 막연하게 냄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사내들을 들뜨게 만들고 술에 취해 이리저리 몰려다니게 만들며 어딘가 근질거리게 만들고 무모한 용기를 솟게 만들고 서로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싸우게 만들며 그들의 피가 맹렬히 아랫도리로 몰려가게 하는, 그 냄새를 두고 누군가는 배란기에 이른 암컷에게서 나는 암내라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유식하게 페로몬의 일종이라고도 했는데,
P.55 어느새 바다 저편으로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바야흐로 세상만물이 모두 자신의 은신처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P.68 마침내 둑이 무너졌다. 걷잡을 수 없이 봇물이 쏟아져내렸다. 금복 은 비로소 차가운 바닷물에 담가야만 잠들 수 있었던 식지 않는 열기와 자신의 등을 떠밀어 고향을 떠나게 했던 멈추지 않는 바람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탐욕스런 혀가 온몸을 핥아댔다. 혀가 지나는 곳마다 소름이 돋아났다. 솜털이 곤두섰다. 부끄러움과 미숙함은 이미 멀리 달아나버렸다. 그녀는 몸을 활짝 열어젖혔다. 한 치의 틈도 허용 하지 않으려는 듯 두 다리로 걱정의 꿈틀거리는 허벅지를 휘감아 힘껏 끌어안았다.
- 네가 내 몸 속을 파고들어오는 것 같아.
난생처음 맛보는 엄청난 쾌락에 온몸을 부르르 떠는 걱정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떨림은 금복에게도 그대로 전해져 그녀 또한 온몸을 뒤흔드는 진동을 견디느라 이를 악물었다. 뜨거운 덩어리가 목울대를 치밀고 올라왔다. 몸 속의 내장이 죄다 밖으로 튕겨나갈 것 같은 두려움과 흥분에 그녀는 울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걱정의 단단한 엉덩이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일백조 개의 세포가 낱낱이 흩어져 허공에 뿌려졌다가 곧 무서운 흡입력으로 다시 한데 모아지며 마침내 폭발이 일어났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려는 듯 몸 속 깊숙한 곳에서 격렬한 수축이 일어났다. 그리고 평화가 찾아왔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고요한 기쁨 가운데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금복과 걱정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변강쇠와 옹녀처럼, 아사달과 아사녀처럼 운명적으로 서로를 사랑했다. 그들은 부족함도 더함도 없이 연리지처럼 서로 단단하게 결합되었고 암나사와 수나사처럼 빈틈없이 꼭 들어맞았다. 두 사람은 밤마다 열락의 폭풍 속에 내동댕이쳐졌다 곧이어 한없이 낮은 곳으로 추락하곤 했다.
P.72 말하자면 그녀는 아무리 사내랍시고 으쓱거려도 걱정만큼 굵은 팔뚝과 큰 뱃구레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진정한 사내로 여기질 않았다.
P.82 금복은 어떻게 태풍이 올 걸 미리 알았을까. 그녀의 몸 속 어딘가에 메뚜기와 같은 초감각기관이라도 숨어 있었던 걸까, 아니면 범인들이 갖지 못한 특수한 예지능력이라도 갖고 있었을까. 세상에 떠도는 얘기들을 모두 신뢰할 수는 없다. 이야기란 본시, 전하는 자의 입장에 따라, 듣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 이야기꾼의 솜씨에 따라 가감과 변형이 있게 마련이다. 일점일획 어긋남이 없다는 성서조차 의심을 받는 판국에 세상에 떠도는 얘기를 믿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뚜렷한 반증도 없이 무턱대고 의심만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래도 맑은 하늘에 태평양만한 구멍이 나 있다는 이야기보다는 훨씬 그럴듯하지 않은가!
대저, 믿는 자에게 평화가 있나니.
P.86 그녀는 문 앞에 앉아 약을 달이면서 난생처음 자신도 모르는 어떤 신에게 기도를 했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그대, 스스로 완전한 존재여. 나의 모든 것.
내 모든 비밀과 기쁨, 내가 걸어온 모든 발걸음, 내 모든 피와 살을 들어 바라건대 부디 이이를 구해주소서. 그 대가가 무엇이든 기쁘게 받겠나이다.
P.127 망아의 상태에서 허랑한 시간들이 흘러갔다.
P.129 금복이 세상을 떠돈 지 이태가 되던 해 여름, 나라엔 큰 전쟁이 있었 다. 남쪽과 북쪽으로 나뉘어 싸우게 된 그 전쟁은 이후 삼 년이나 지속 되었다. 당시만 해도 산 것이나 죽은 것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으며 죽음은 너무나 흔해서 귀하게 취급받지 못했다.
P.129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감춘 채 아무나 붙잡고 상대방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둘 중의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은 언제나 반반이었다. 그것은 이념의 법칙이었다.
P.141 당연하지. 보고 싶은 것들은 언젠간 다시 만나게 되어 있어.
P.145
이름은 평평하나 너른 벌 하나 없고
이름은 집터로되 사람 살 집 아니로다
••야, 이 개새끼들아! 그만 좀 짖어!
P.154 그녀에게 ‘적당히’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사랑은 불길처럼 타올라야 사랑이었고 증오는 얼음장보다 더 차가워야 비로소 증오였다.
P.188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된다.
P.216 그녀가 엑스레이 사진을 통해 발견한 것은 바로 죽음 뒤에 남게 될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날 이후, 그녀는 언제나 입버릇처럼 죽어지면 썩어질 몸 이란 말을 자주 되뇌었다. 그리고 곧 내키는 대로 아무 사내하고나 살을 섞는 자유분방한 바람기가 시작되는데, 그것은 어쩌면 평생을 죽음과 벗하며 살아온 그녀가 곧 스러질 육신의 한계와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덧없는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P.242 곧 미사일론에 대한 반박이 뒤따랐다. 전쟁을 겪어보지도 않은 노 파가 어떻게 미사일을 아느냐는 거였다. 귀신이기 때문에 모르는 게 없다는 해명에 대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말라는 반박이 나왔으며, 뒤이어 어따 대고 선배 앞에서 그따위 개소리를 하느냐는 성명이 발표되자. 너 대학 어디 나왔냐는 질문이 나왔고, 이 씹쌔야, 어딜 나온 게 무슨 상관이냐는 반론이 제기되자, 저 새끼, 싸가지 없는 건 학교 다닐 때부터 알아봤다는 인물평과. 저 새끼는 학계에서 완전히 매장시켜버려야 된다는 매장론이 뒤따랐으며, 선배 무시하다 뒈지게 맞고 피똥 싼 놈 많다는 협박과, 누군 씹할, 고스톱 쳐서 학위 딴지 아냐는 고스톱 학위론, 그럼 씹쌕꺄, 미사일이 아니면 도대체 뭐냐. 뭐 긴 뭐야, 색끼, 니 애비 좆이라니까, 라는 식으로 반박이 줄줄이 이어 지며 논쟁은 점점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어갔다. 이후에도 불기둥 논쟁, 남쪽 논쟁, 검 논쟁 등 논쟁의 범위가 점차 확대되며 공수논쟁은 그해가 다 가도록 끝도 없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P.342 그는 여러 카페를 전전하며 다양한 부류의 예술가들과 교류했는데, 카페마다 각기 모이는 부류가 달랐다. 말하자면, 문인들이 주로 모이 는 카페가 따로 있었고 화가들이 모이는 카페, 또는 음악가나 평론가 들이 모이는 카페가 각기 달랐다. 그 이유는 그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치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약장수는 한 카페에서 주워들은 얘기를 다른 카페에서 써먹는 식으로 대화에 끼어들었고, 그 효과는 놀랄 만큼 좋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멘트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1 형식주의는 모방론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죠.
2 보르헤스는 프랑스 영화에 대해 지리함에 대한 열광이라고 언급 한 적이 있어요. 그렇다면 할리우드 영화는 무엇에 대한 열광일까요?
_-요즘 소설은 점점 더 미니멀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아마도 세상이 갈수록 복잡해진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그런 식의 짧은 말 한마디면 사람들은 대개 그의 통찰력에 놀라며 의심없이 그를 자신들과 같은 부족으로 인정해주었다. 혹 누군가가 그의 언급에 대해 좀더 깊이 대화를 나누려고 하면 그는 신중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이 물러서곤 했다.
- 글쎄요, 그냥 제 짧은 소견이 그렇다는 것뿐이죠.
그리곤, 커피를 한 모금 찔끔 마시며 다음과 같은 말로 화제를 돌렸다.
- 그런데 이번 문학상은 심사위원들이 너무 보수적인 선택을 한 게 아닐까요? 물론, 그 작가가 훌륭하다는 건 나도 인정하지만.
그 정도면 언제나 충분했다. 그가 한마디 던져놓으면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떠들어주었기 때문에 그는 적당히 미소를 머금고 앉아 듣고 있기만 하면 되었다. 그것은 토론의 법칙이었다. 지식인이란 부류는 대개 음험한 속셈을 감추고 있어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는데, 그것은 한편으론 자신의 약점이 드러날까봐 두려워 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론 아무하고도 적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대화는 언제나 수박 겉핥기 식일 수밖에 없었으며 약장수는 그 점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P.350 그 동안 새순처럼 여리고 무구한 춘희의 감성은 깊은 상처를 입 었다. 그러나 춘희는 자신의 상처를 어떤 뒤틀린 증오나 교묘한 복수 심으로 바꿔내는 술책을 알지 못했다. 고통은 그저 고통일 뿐 다른 어떤 것으로도 환치되지 않았다. 상처는 지워지지 않았고 그녀의 가슴 한가운데엔 고통이 화석처럼 굳게 자리를 잡았다. 그것이 춘희의 방식 이었다.
P.396
1 얘야, 너는 세상에 하느님이 있다고 생각하니?
2 글쎄요. 만일 그딴 게 있었다면 내가 열두 살 때부터 커피를 나르 게 놔뒀겠어요?
부록(심사평, 작가와의 인터뷰)
P.426 이 작가가 선택한 이야기 전략이 글이라기보다 말이라는 사실이 점점 명백해진다.
P.437 전 공군에 입대했는데 제가 있던 부대 정훈실 에 황석영 김지하 이영희 백기완 선생 같은 분들의 책이 있었어요.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것이 그때가 바로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 치하였거든요. 지금 기억으로는 『통일이냐 반통일이냐, 『전환시대의 논리」 같은 소위 불온서적들도 있었고, 『황토」 『타는 목마름으로, 같은 김지하 선생 시집, 또 고은 선생의 전집도 있었고요. 심지어는 광주항쟁 기록집인 황석영 선생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도 그때 봤어요. 대학 서클실도 아닌 보안사 요원들이 왔다 갔다하는 살벌한 군대 정훈실에 그런 책들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얘기 같지만 사실이에요. 어쨌거나 그 책들 덕분에 저는 군대에서 의식화가 돼서 나온 특별한 케이스가 되었죠.
P.443 항종연 선생님이 하신 얘기가 기억납니다. 소설가란 어떻게 보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경험 안에 축적되어 있는 이야기에 의미 있는 형식을 부여하는 사람들이 아니냐, 는. 저는 그 말에 상당히 공감하는 편입니다
P.443
먼저 변사식 내레이터에 대해 물었다. 이제까지 이 소설만큼 많은 이야기를 날것인 상태로 한자리에 모은 소설로는 내 독서 범위 안에서 는 홍명희의 『임꺽정」 말고는 없다. 임꺽정을 쓰기 위해 민담을 가져 온 것인지 민담을 쓰기 위해 임꺽정에 의탁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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