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특이한....
무당이 직접 책을 쓴다는 것도 그렇고 본인의 이야기가 담긴 글을 쓴다는 것도 그렇고?? 퀴어 프렌들리하고 모든 종교적 가치를 받아들이는.. 여러모로 정말 보기 힘든 무당; 요즘말하는 엠지무당 되시겠다..
무업과 무교 무당 관련해서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정보를 찾고 있었는데 온갖....... 정말 오래된 도서들 사이에 혼자 깔쌈한 디자인으로 존재하는 이 책.. 안볼수가 없었음
또 어떤면에선 한국의 보수적인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겠지만 동시에.. 오픈마인드에 소수자 관련해서 많이 생각을 해본 사람이라면! 도움이 될것임
또 신줄이 있다. 신줄,조상줄,칠성줄 어쩌고 공을 드려야한다 어쩌고 빌고 살아야한다 이런 소리 많이 듣는 사람이라면 위로가 될 수도 있겠다 싶음.
하기사 무당은 계속 나타나고 있고 대대로 한국에서 보여온 일종의 자연 현상과도 같은건데 태아령이니 뭐니 이런 시대착오적인 말을 계속 이어갈 필요가 없고 그런 말을 해줄 무당이 필요함.
하지만 MZ무당이라 해도 여전히 깔쌈한 부분이 있다는건 맞음.. ㅋㅋㅋㅋㅋㅋㅋㅋ
P.17 손님들이 나를 발견하게 되는 행위 자체가 이미 점을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 중에, 핸드폰을 켜서 유튜브로 들어오고, 유튜브의 수많은 채널 중에 내 채널로 들어와서 하필 주간 운세를 이 시점에 보게 된 행위 자체가 점을 보는 것과 같다. 마치 여러 장의 타로 카드 중에 한 장을 뽑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연은 없다.
P.103 나는 연애가 고플 때 가끔 틴더를 열어본다. 작년, 너무 외로웠던 겨울에는 틴더로 열세 명을 만났다. 열 세 명까지만 만나보겠다고 결심한 터였다. (숫자 13은 마야 달
력에서 우주를 한 바퀴 도는 숫자다.)
P.116
선녀 : 반가워요. 저는 얼마 전 내림굿을 한 애동제자 선녀라고 합니다. 애동제자 칼리 님의 글을 읽으면 서 힘을 받고 많이 배우고 있어요. 저의 신어머니는 책을 읽지 말라고 하셔서 몰래 칼리 님의 책을 읽어요. 그런데 궁금해요. 칼리 님은 책을 읽어도 괜찮나요? 저희 신어머니는 애동제자 때 신령님과 소통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 데 책이 그걸 방해 하니 읽지 말라고 하시거든요. 이야기할 곳이 없 어서 이렇게 메시지 드립니다.
칼리 : 반가워요, 선녀 님. 신령님과 소통하면서 나의 직관을 믿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그걸 방해할까 봐 책을 읽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런 고민을 했었는데요, 누구의 이야기를 읽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선녀 님이 제 글을 읽고 마음에서 일렁이는 무언가가 있었다면 매체가 어떻든 그것은 신령님의 뜻이자 선녀님 자신이 필요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우리 계속 읽고 쓰면서
소통해요. 감사합니다.
P.117 옛날부터 무당들은 책을 읽는 대신 저잣거리 아낙네들의 수다를 듣고, 한 서린 흥얼거림에 귀 기울여왔다. 그 흥얼거림이 굿판의 주제가가 되었고 구전되어 전승된 게 지금의 서해안 배연신굿을 비롯 한 많은 굿거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독서를 하냐 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의 책을 읽을지가 중요한 선택 같다. 누구의 이야기를 들을 것인지 선택하는 것이니까.
P.132 나는 굿을 받으라는 이야기를 듣고 온 손님에게 동물을 올려야 하는 굿판 대신 봉사활동을 하라고 말씀드리곤 한다. 봉사하는 것이 굿을 여는 것보다 더 효과적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굿을 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되면 돼지 머리나 닭의 살점이 필요하지 않은 굿판을 열면 된다. 나물 반찬과 과일로 꾸려진 제사상에 향을 피우고, 억울하게 죽은 돼지와 오리, 닭들을 위한 위령제를 함께 열고 싶다.
P.145
사과 : 아침에 일어나서 신 선생님 옥수 그릇 갈고, 신 선생님 신당 바닥 닦고, 신물 닦고, 빨래 돌리면서 하루를 시작해요. 어떤 땐 신 선생님 자녀들 어린이 집 보내는 일도 하고요. 가끔은 내가 가사도우미로 고용된 건지, 무당인 건지 싶어요.
칼리 : 그런 일은 신 선생님이 하셔야 하는 거 아닐까요? 돌봄 노동은 그 자체로 기도인데요.
사과 : 그런 것 같긴 한데, 배운다는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어요.
칼리 : 임금은 받고 있나요?
사과 : 아니요. 임금을 따로 받진 않아요. 밥도 제가 차리고, 빨래도 제가 하지만요.
칼리 : 임금체불이네요. 그러면 안 되지 않아요?
P.151 영화, 드라마와 다르게 살을 쓰는 사람은 99.9퍼센트 역살을 맞을 수밖에 없다. 역살이란 살을 쓴 사람에게 살이 돌아오는 것이다. 나에게도 방법을 문의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누군가를 저주할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말한다. "제가 굳이 살을 치지 않아도 손님이 살을 치고 있어요.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면, 미움 받는 상대방은 물론 손님에게도 살이 돌아오거든요." 내가 손님들에게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 마음과 용서를 강조하는 이유다.
P.173 2천5백만 원이 없어서 내림굿을 받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는 내가 무당이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 때로부터 일 년 후, 나는 돈 한 푼 없이 내림굿을 받게 되었 다. 지금의 신 선생님을 만난 덕분이다. 만약 2천5백만 원이 드는 내림굿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확실한 건, 내림굿 비용을 많이 치를수록 '신빨'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P.175 “ 손님은 꼭 내림굿을 받지 않아도 다른 방식으로 신명을 풀 수 있어요. 굿은 마치 파티에서 밤새 춤추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처럼 신을 받아들여 신명을 푸는 거예요. 큰 돈을 들이지 않아도 해결할 방법은 있어요. 손님 같은 경우엔 가까운 정신과에 찾아가서 약을 타는 것도 도움이 될 거예요.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엑스터시, 황홀경을 경험해요. 그런 것처럼 가슴 뛰게 만드는 음악을 자주 들으세요. 스스로가 즐거워하는 걸 자주 해주세요. 또 한 가지 좋은 방법은 글을 쓰는 거예요. 글을 쓰면서 의식화되지 못한 나의 무의식을 볼 수 있어요. 그게 나의 신명 과 소통하는 과정이기도 해요. 이렇게만 하셔도 마음이 안 정되고 운이 좋아질 거예요. 너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원래 진실은 단순하니까요. 이런저런 노력을 해도 안 될 때, 자꾸 귀신이 보이고 너무 혼란스러워지면 그때 저를 다시 찾아주세요."
P.203 나는 동녀를 위해 가끔 과자를 먹는다. 동녀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맛있는 과자를 먹을 때다. 따뜻한 목욕도 좋아해서, 목욕을 할 때 어린아이의 몸을 닦아주듯 정성스럽 게 내 몸을 닦게 된다.
동녀와 함께하는 일상은 달콤하고 즐겁다. 함께 과자를 먹고, 다 배우지 못한 피아노 건반을 치고, 따뜻한 목욕을 시켜주게 한 동녀가 곁에 있어서 하루가 다채로워졌다. 동녀를 만난 후 나를 돌보는 일을 부차적인 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동녀가 나를 돌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동녀에게 묻는다. 다음엔 뭘 하고 싶어? 아직 다 배우지 못한 자전거 타기? 여전히 무서워하는 공놀이?
P.226 다양한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을 가지고 있는 손님들은 자신이 이상한게 아닌지 확인하러 나를 찾아온다. 나는 괜찮다고, 이상한 게 아니라고 답변한다. 이런 손님들은 굳이 점집에 오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신이 이미 답을 알 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기 위해,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확인받기 위해 무당을 찾는다.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사회의 분위기에 지쳐서 점집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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