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더티 워크 - 이얼 프레스

 

사회고발 책 그만 읽고 행복한 돼지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죠? ㅋㅋㅋㅋㅋㅋ

 

내가 시위를 하거나 사회적 운동을 할때... 그런 행위를 같이 하는 특정 주변인을 보고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는걸 느꼈는데 <생활비가 떨어지거나 빚을 질 걱정 없이 반전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교육받은 중산층> 이 대목에서 완전히 느꼈음.. ㅋㅋㅋㅋ 내 안에 있는 근질근질한......... 니넨 굶을걱정 안해도 되잖아!!!가 계속 목끝까지 차올랐었는데 그게 그냥 질투심이고 자격지심인줄 알고(그럴수도 있겠지만) 그냥 내가 개똘추새낀가보다하고 눌러담았음 근데 이젠 그게 어디서 온 감정인지 확실히 알겠고 ..........

요즘 유행하는 '기만'이라는 단어가 그때 확실히 느껴졌던 것 같음

 

어찌됐건 책을 못 끊는 코리아 불가촉천민중 하나로서........ 좋은 경험이었음

 

2023 베스트 비문학 책 선정합니다.

아니다 광기와 성 다음으로 베스트



힘없는 사람은 더러운 일을 직접 해야 한다.
힘 있는 사람은 남에게 시킨다.
-제임스 볼드윈

P.23 대량감금과 표적살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런 일들이 필수적이지 않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기성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이다. 많은 미국인이 해결되기를 바라면서도 깊이 고민하고 싶어 하지는 않고, 본인이 직접 해결할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는 문제 말이다. 가령 치료 시설이 태부족한 지역사회에서 그 많은 중증 정신질환자를 어디에 수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들을 구치소나 교도소에 몰아넣고 잊어버리면 해결될 것이다. 또는 고문, 무기한 구금을 둘러싼 불편한 논쟁과 막대한 비용이 드는 대외 간섭에 국민이 더 이상 흥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전쟁을 계속할 수 있을 까 하는 문제는 드론 무기를 쓰면 해결될 것이다.
코로나 기간 동안 일부 더티 워크가 살짝 가시화되기도 했다. 정육공장에서는 대부분이 유색인인 노동자가 값싼 육류 가격으로 대중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극악한 환경에서 가축을 도축하는데, 소비자는 결코 그 광경을 목격할 일이 없다. 그러다 코로나 대유행을 계기로 공장에서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생산하는 이들이 감당하는 물리적 위험이 화제가 되었다. 코로나로 수십 명이 죽고 수십만 명이 감염되는 와중에 미 정부가 정육공장을 계속 가동하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다른 종류의 더티 워커가 흔히 그렇듯 도축 노동자도 극한의 물리적 위험에 노출되곤 한다. 이 산업의 노동조전이 워낙 가혹하고 노동자의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축 노동자는 물리적 위험만이 아니라 이 노동의 불쾌한 성 격에서 비롯되는 또 다른 위험을 감당하고 있다. 물리적 위험만큼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큰 위험이다. 사람들은 정신질환자를 대량감금하는 행위뿐 아니라 공장식 대량도축에 대해서도 불편함을 느끼고 심할 경우에는 반감과 수치심을 느낀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은 감금이나 도축이 직업인 사람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결국에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자기 인식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P.24 사회학 명저 《계급의 숨겨진 상처me middon Injuries of C126)(1972)에서 리차드 세넷Rs chard Semett 과 조너선 콥 onathan coo은 계급 분석의 초점을 노동자의 물질적 조건이 아니라 그 사람이 겪는 도덕적 부담과 감정적인 어려움"에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P.27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는 사회에서는 손을 더럽히는 짐을 누가 떠맡고 양심을 깨끗하게 지키는 혜택은 누가 누리는가 하는 문제 또한 경제적 특권에 따라 결정된다.

P.32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독일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loroart Bio는 그의 두 권짜리 명저 <문명화 과정>에서 서양의 도덕과 풍습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추적하며 충격적이거나 불쾌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 행위(침 뱉는 행위, 폭력과 공격성을 드러내는 행위 등)가 공적 생활에서 점차 금지된 과정을 밝혔다. 엘리아스는 1939년에 이 책을 완성했는데, 이는 왜 이 책이 이후 수십 년간 주목받지 못했는지 설명해줄 수 있다. 사람들은 서양 문명이 나치 시대에 이르러 가면을 벗고 그 야만스러운 얼굴을 드러냈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엘리아스는 “문명화 과정"을 도덕적 진보와 동일시하지 않았다.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그는 문명화란 사회적 통제가 강화되는 과정이며, 그 결과 부적절한 것으로 여겨지는 관행들이 더 은밀한 곳에서 수행되게 되었다고 보았다.

P.34 연구에 따르면 최근 대학 졸업자들의 감정 이입 능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알고자 하는 의지와 함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는 의지까지 점점 사라지고 있는것 같다.

P.36 전쟁에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부터 가장 취약한 시민을 어디에 감금할 것인가까 지 모든 문제에 대해 우리가 내린 결정의 산물이다. 우리가 더티 워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우리 사회의 근간을 드러낸다. 우리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떤 사회질서를 무의식적으로 승인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타인에게 어떤 일을 시키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P.65 “한 사회가 정신장애 행동을 인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는 1972년의 논문에 이렇게 썼다. 만약 정신장애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이 정신보건 체제라는 사회통제 안으로 진입하는 속도가 지체된다면, 지역사회의 압력은 그들을 형사처벌 체제라는 사회 통제 속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P.71 그는 데이드에서 폭행 사건을 목격한 뒤 일을 그만둘까도 고민했지만 해리엇과 마찬가지로 그럴 형편이 못 되었다. “돈 문제만 아니었다면 그만뒀을 거예요." 그가 시선을 떨구며 말했다. “다른 일자리가 없었어요."

P.84 2012년 사회학 자 브루스 웨스턴 mage Hostom의 연구팀은 매사추세츠주 교정시설 수감자 122명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중 절반이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구타당했다고 답변했다. 성폭행을 당한 사람도 많았다.
또한 무질서하고 위험한 동네에 살면서 총기 사고를 목격한 사람도 많았다. 대다수의 폭력범은 처음 범죄를 저지르기 한참 전부터 피해자다." 웨스턴은 이렇게 요약한다. 과거에 피해자였던 수감자가 많다는 것은 그들이 그저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자비와 연민”의 대상임을 뜻하지만, 교도소에는 그런 정서가 거의 없다고 웨스턴은 말한다.

P.85 . "난 세상 이쪽에는 옳은 일 이 있고 저쪽에는 그른 일이 있다고, 옳고 그름은 그렇게 나뉘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옳은 일을 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옳은 일을 할 거라고도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애초에 옳은 일을 하고 싶어서 그 자리에 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이 명쾌했던 구분이 이제는 자신의 경험이 비추는 희부연 빛 속에서 혼란스럽고 흐릿해졌다. '나는 시스템의 피해자였을까, 아니면 시스템의 도구였을까? 난 어느 쪽에 섰던 것일까? 때로는 자신에게 선택지가 없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데이드 교도소에서 그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사다리의 맨 아래층에 속했고" 사소하디 사소한 불복종의 기색만으로도 위험을 자초할 수 있었다.

P.100 미국 교도소의 흑인 재소자 비율은 아파르트헤이트 시대 남아공의 교도소보다도 높았다.

P.111 그는 식당에 가면 절대로 문을 등지고 앉지 않는다면서 이는 자신이 아는 모든 교도관의 공통된 습관이라고 했다.

P.123 노예 거래의 낙인은 거래 과정에서도 특히 악 명 높았던 "저속한 고역'을 담당한 "하류층 가정의 남자"에게 주로 돌아갔다. 반면에 가장 큰 규모로 노예를 사고팔아 가장 많은 돈을 버는 노예상은 비난을 비껴갔다. "이 사업으로 출세한 사람들에게는 나인이 거의 찍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역사학자 월터 존슨Mater Johson은 뉴올리언스 노예 시장에 관한 권위서 《하나하나의 영혼 301 by S0u (1999)에 이렇게 썼다. 이 말대로 가장 큰 노에 거래 회사를 운영하는 부유한 남자들은 떠돌이 생활을 하는 하류층 일원들에게 실무의 대부분을 외주하고는 그들과 떨어진 곳에, 더 우아한 무리 속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한 부유상은 누군가 그의 이름으로 판매된 노예에 대해 질문하자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저 신사들이 하는 일이죠. 나는 아무 관계가 없답니다." 그 '영혼물이꾼'들이 자신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말 은 생략했다. 

P.133 “우리가 쓰레기를 내다 버리면 쓰레기가 어디론가 치워지잖아요. 우리는 그 쓰레기가 어디로 갈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생각 할 때는 매립지가 다 차서 새 매립지를 살 돈을 낼 때뿐이죠.”

P.138 그의 1939년 저서 (문명화 과정》은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식사 예절을 비롯한 행동 규범의 변화를 추적한 유럽 풍속사 연구로, 처벌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근래 들어 범죄와 처벌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엘리아스의 통찰을 빌려 현대적 형별 관행의 아이러니와 모순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엘리아스에 따르면 '•문명화 과정의 핵심은 내적 통제의 강화이며, 그 과정에서 사회적 행위자들이 인간 행동의 "동물적' 측면을 억압하고 그런 행동을 타인에게 숨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침을 뱉거나 방귀를 뀌는 등의 신체 기능이 불쾌한 것으로 여겨져 상류사회에서 추방당했다. 죽은 동물을 자르는 행위 는 원래 잔칫상에서 하던 일이었으나 점잖은 상류층이 지닌 “불쾌 감의 한계치"가 높아지면서 ”충격적인 일"로 여겨져 시야에서 숨겨졌다.
 엘리아스가 처벌 관행의 '문명화'까지 논하지는 않았지만, 은폐야말로 문명화 과정의 핵심이라는 그의 통찰은 고문과 처벌을 설명하기에도 매우 적합해 보였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유럽에 서는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범죄자를 교수대로 끌고 가서 사지를 절단하거나 불에 태우거나 교수대에 매다는 일이 일상적으로 행해졌다. 그러다 19세기 들어서는 볼거리로서의 처벌이 점점 드물어졌고 범죄자를 공개적으로 매질하거나 참수하는 오래된 관행은 대개 불법화되었다. 그 주된 이유는 엘리트 계층이 그러한 관행에 혐오감을 느끼게 되어서였다.

P.140 그러나 엘리아스의 계승자들이 말하듯이 '문명화 과정'은 잔인한 폭력이 실제로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그저 더 은밀한 장소로 밀려난다는 뜻 이다.

P.187  일부 분석가들은 버튼으로 드론을 조종하는 '조이스틱 전사들‘도 아무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P.190  드로 전사들은 그 경계를 매일 넘나든다. 근무를 마친 요원들은 마치 회사원처럼 각자 차를 물고 기지를 나선다. 방금 전까지 전장에서 싸운 사람이 그 길로 교회에 가거나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간다. 크리치에서 5년간 드론 조종사로 복무한 뒤 은퇴한 제프 브라이트는 이런 전환의 당혹스러움을 이렇게 설명했다. "말 그대로 적에게 폭탄을 떨어뜨리다가 퇴근을 해요. 그럼 20분쯤 있다 ‘오는 길에 우유 사올 수 있어?’ 같은 문자가 와요." 브라이트는 드론 부대에서 일하는 것이 좋았고 자신이 무언가를 바꾸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같은 부대의 다른 조종사들은 스트레스에 대처하는데 애를 먹었다. 이혼하는 사람이 많았고 자살하는 사람도 있었다.

P.192  한 조종사는 재커리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전 정말 궁금해요. 제가 저질러온 이 모든 살인에 대해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실까요.?" 그들은 전쟁 터에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속을 뒤집는" 장면(그 자신 이 참나에 내린 결정의 결과일 때도 있고, 그들이 어쩔 수 없는 결과일 때도 있다)에 끊임없이 노출된 나머지 영적으로 길을 잃고 전혀 다른 종류의 전쟁 상흔을 입는다. 재커리는 그 상흔을 '도덕적 외상'이 라고 불렀다. 이 용어는 재커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 '도덕적 외상'이라는 말은 정신의학자 조너선 셰이 vonathan Shey의 1994년 저서 <베트남의 아킬레우스chines tn wet>에 처음 등장했다. 여기서 셰이는 호메 로스의 전쟁 서사시 《일리아스>를 재해석하여 베트남전 귀환병들을 괴롭히는 상처의 성격을 탐색한다.

P.193 "근본까지 닿아 있는 도덕적 신념을 위배하는 행위를 스스로 행하거나, 막지 못하거나, 목격하는 일”에서 비롯되는 괴로움까지 '도덕적 외상'이라고 불렀다.

P.207 “전사 중 어느 한쪽에 완전한 면책권을 부여하고 사람을 죽이라고 하면, 그 사람은 살인자가 된다. 왜냐하면 상대가 나를 죽이려 한다는 확신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것인 데다 자기는 절대적으로 안전한 상태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P.211 내가 만난 또 한 명의 전직 드론 조종사는 화면이라는 장치가 역설적으로 목표물과의 친밀감을 과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직 발표하지 않은 논문에서 이 현상을 "인지적 전투 친밀성"이라고 명명하며, 폭력적인 사건을 고해상도로 면밀히 관찰할 때 형성되는 관계적 애착을 분석했다. 논문의 한 대목에서 그는 이런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조종사가 공습으로 '테러리스트 조력자‘를 살해하지만 그의 아이는 살아남는다. 그 후 "아이가 아버지의 산산조각 난 시체로 다가가 파편을 다시 인간 형태로 배치하기 시작해" 조종사를 경악케 한다. 드론 기술이 점차 발전하면서 이론 상으로는 원격 공습이 쉬워졌지만, 현장의 원격 전사들은 더 생생하고 강렬한 화면을 지켜보게 되었다. 목표물이 옷을 입고 아침을 먹고 아이들과 노는 등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더 많이 목도할수록 조종사가 "도덕적 외상을 입을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 이 논문의 결론이었다.

P.230 헤더의 신경을 건드린 것은 병사의 고통을 못 알아보는 시위대의 무지만이 아니었다. 헤더는 우월감을 내뿜는 듯한 그들의 모습이 거슬렸다. 이것은 사회계급적 차이에서 비롯된 인상이었다. 코드 핑크 시위대에는 생활비가 떨어지거나 빚을 질 걱정 없이 반전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교육받은 중산층 여성이 많다. 토비 블로메도 그중 한 사람이다. 반면 드론 부대에는 그런 사치스러운 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헤더처럼 침체된 시골이나 척박한 소도시에서 자라 고등학교만 마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베트남전쟁 때 일부 귀환병이 징병을 연기할 수 있었던 유복한 집안의 대학생 자제들에게 낙인찍히는 기분을 느꼈던 것처럼, 헤더는 자기처럼 살지 않아도 되는 특권을 가진 이들이 자기를 이래저래 판단하는 것 에 쓰라린 불쾌감을 느꼈다. "내가 장담하는데, 당신들 중에 내가 누구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아끼는 사람이 죽게 되는 이 뭣 같은 상황을 겪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는 코드 핑크 시위대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헤더가 보기에, 그들은 군대 같은 위계 조직 안에서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그들이 구호를 외치며 설득하려는 하급 병사들은 드론 전투에 대해 발언할 권한이 거의 없다.

P.246 이 성토는 이해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칸투같은 국경순찰대 요원에게 '나치‘ 딱지를 붙이기 전에, 진짜 나치의 악행을 경험 했던 한 작가의 글을 살펴보면 좋을 듯하다. 이탈리아의 소설가 프리모 레비Primo ter는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중 <회색지대( zona grigia)라는 에세이에서 죽음의 수용소에 나타났던 노동 분업에 주목했다. 가장 추악하고 모욕적인 일, 가령 유해를 쓸어 치우거나 피해자를 선정하는 일 등이 포로에게 위임되었고, 그 일을 맡은 포로는 특권(여분의 빵 한 조각, 죽음을 피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누렸다. 나치가 이 전략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인력 부족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도덕적인 이유였다. 레비에 따르면, 나치는 그들을 죽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들을 불결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들에게 죄의 부담을 지게 하고, 피로 물들이고, 최대한 그들의 이름을 더럽히고, 그렇게 그들을 공모 관계로 묶음으로써 다시는 등 돌릴 수 없게 해야 했다."

P.248 어떠한 사회질서에서든 권력 격차가 존재하는 한 그 질서의 맨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부정한 시스템의 "매개물이자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권력이 없다는 그 사실이 권력을 행사하려는 욕망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P.268 "군대의 임무는 전쟁을 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임을 잊지 마라“

P.278 닭고기 정육공장 해체 라인의 시급은 11~13달러다. 다른 일반 공장보다는 적은 편이었지만, 플로르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에 서는 그곳이 제일 나았다. 그래서 플로르는 정육공장에서 일하는 것의 단점을 애써 무시하고 다시 한번 샌더슨 팜스에 지원했다. 이번에 배정받은 일은 '생닭 걸기', 즉 상자에서 닭을 꺼내 컨베이어벨트의 쇠고랑에 발을 거는 일이었다. 벨트에 걸린 닭은 전류를 통과하고(여기서 기절한다) 자동 목 절단기를 통과해(여기서 목이 잘린다) 뜨거운 물에 씻긴다(여기서 깃털이 빠진다). 때때로 일어나는 일인데, 혹시라도 이 과정에서 살아남는 닭이 있으면 사람이 직접 칼로 목을 자른다. 처음 그 광경을 보았을 때 플로르는 엉엉 울 면서 다시는 닭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본인의 고통이 너무 심해서 닭을 걱정할 겨를이 없었다. 생닭 걸기 라인에서는 한 사람이 1분에 65마리를 벨트에 걸어야 했다. 이 광폭한 속도를 따라가려면 한 손에 한 마리씩, 한 번에 두 마리를 꺼내 벨트에 거는 즉시 몸을 굽히고 다음 두 마리를 꺼내야 했다. 다부진 체구의 남자들도 이 동작을 몇 시간씩 반복하는 걸 힘들어했다. 손이 작고 몸집도 자그마한 플로르에게는 이 일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일을 시작하고 며칠 만에 아래팔의 감각이 사라졌다. 통증으로 인한 마비였다. 밤에는 목과 어깨가 욱신거려 진통제를 먹어야 했다.

P.321 그러나 상황이 절망적인 것과는 별개로 플로르는 자기연민이나 패배주의에 빠진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는 다시 한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어 앞날을 낙관하는듯했다.“이건 정말 기적이에요. 나는 원래 지금까지 살아 있을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난 여기 이렇게 있어요." 그는 썼다.

P.373 증언 중에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 속에서 수염을 기른 스티븐은 어딘가 먼 곳을 보듯 눈빚이 멍하다. 슬픔에 잠겼다기보다는 넋을 잃고 표류하는 사람 같다.

P.386 정치적으로 진보적이고 환경 의식이 높은 지역의 주민은 쉽게도 이런 계층을 내려다보는 동시에 자신이 그들에게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편리하게 잊는다.

P.424 내가 만난 더티 워커 가운데 이 전략을 취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실패했다. 데이드 교도소에서 소란을 피운 사람은 교도관에게 보복당하거나 해고당했다. 정육공장에서 일하는 이민자는 회사가 다른 값싼 저숙련 노동자를 쉽게 고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불만을 제기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시추선 노동자는 안전 장비가 미비하다고 말하지 못했고, 드론 전투원은 군부가 내부고발자를 어떻게 취급하는지 목도하고 침묵했다. 폴슨이 이들과 달리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가 대체하기 훨씬 어려운 전문 인력(그에겐 응용수학 박사학위와 항공우주공학 석사학위가 있었다)이었기 때문이고 그가 스스로의 가치를 훨씬 더 잘 알았기 때문 이다. 폴슨이 이를 처음 인식한 것은 아직 대학원생이던 시절 여름방학에 미 에너지국 소속 연구실에서 인턴으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계약서에 서명하려고 보니 그의 작업물 전부가 인턴종료 후 1년간이나 연구실에 귀속된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다. 폴슨은 이를 부당하다고 생각하여(자신이 주말에 작성한 오픈소스 소프트 웨어가 왜 연구실에 귀속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서명하지 않기로 했다. 이후 연구실과 이메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한 변호사가 "인턴 주제에 그걸 걸고넘어지다니, 잘라버리세요!"라고 조언하는 것 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연구실은 폴슨을 해고하지 않았다.그가 연구실을 위해 한 작업에 한해서만 권리를 주장하겠다고 계약 조건을 축소했을 뿐이다. 이후 몇 년 사이에 폴슨은 학술 논문을 몇 편 발표하고 조지아공과대학교에서 계산과학공학을 가르치다가 스탠퍼드대학교로부터 일자리를 제안받았다. 그는 계약 조건을 협의한 뒤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팰로앨토로 향하는 도중에 학교 측이 신경과 학자인 파트너의 일자리를 보장하겠다는 조건을 철회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즉각 대학에 전화를 걸어 "그렇다면 저는 제안을 받아 들이지 않겠습니다"라고 통보했다. 그러자 학교 측은 곧장 결정을 번복하여 폴슨의 파트너를 신경과학 연구실의 관리자로 채용하겠다고 약속했다. 폴슨은 이런 일을 경험하면서 내가 만난 더티 워커들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고용 조건은 수락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그리고 목소리를 냄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구글에 와서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 입사하고 1년 반이 지난 시점에 그는 파트너가 박사학위 과정을 밥을 토론토로 이사하겠다고 회사에 알했다. 구글은 토론토 지사에서 업무를 이어갈 것을 제안하면서 생계비 조정을 명목으로 급여를 40퍼센트 삭감하겠다고 했다. 이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폴슨은 캐나다가 미국보다 주거비는 낮아도 세율이 높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그런 조건으로는 일하지 않겠다 고 알렸다. 그날이 가기 전에 한 상사가 폴슨의 자리를 찾아와 새 협상안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향후 4년에 걸쳐 50만 달러 상당의 스톡옵션을 지급하겠다는 조건이 추가되어 있었다. 상사는 "이 정도면 보상이 되겠지요?”라고 물었다. 폴슨은 수정된 제안서를 훑어본 뒤 제안을 받아들였다. 폴슨이 이런 상황마다 목소리를 내어 자신의 이익을 지켜낸 데에는 그가 원래 그런 성격이라는 이유도 없지 않았으니, 그가 소극적이고 자립심이 약한 사람이었더라면 아마 다른 식으로 대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임금을 협상하는 자리에서, 나아가 윤리와 양심의 문제에 대해서 테크 노동자들이 높은 위상과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도 작용했다.

P.439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우월하고 특별하다는 태도로 타인의 비판을 훨씬 더 쉽게 무시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많은 투자 은행가가 자신이 얼룩지고 에누리당했다는 감정을 느끼기는커녕 금융업이 부당하게 규제당하고 비난받게 생겼다며 분개하고 억울해했다. 바로 이것이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이 말한 "능력주의의 오만', 즉 일류 법학대학원, 경영대 학원, 공학대학원에서 학위를 딴 엘리트 계층의 과도한 자기애다. 성공은 개인의 재능과 노력에 달려 있다고 전제하는 능력주의 사회는 선망받는 엘리트 교육기관에 입학하는 능력을 기준으로 사람을 각각의 소득계층과 각각의 직업 경로로 밀어 넣는다. 샌델이 지적한 대로 이 시스템은 일류대학 하위가 없고 근 몇십 년간 소 득이 줄거나 정체되고만 있는 노동자계급의 존엄성과 자존감을 깎아내려왔다. 그와 동시에 초고학력으로 성공한 사회의 '승자들’ 에게는 빛나는 도덕적 자격을 쥐여주며 "성공을 오로지 저 자신이 노력한 결과요, 제 미덕의 척도로 여기라고, 그리고 불우한 사람 을 깔보라고” 부추겨왔다. 성공한 능력주의자의 오만은 정당하지 않다고, 왜냐하면 초 고학력으로 성공한 사람은 너무도 흔히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성공한 능력주의자가 오만한 이유는 그처럼 자신을 경멸하는 사람마저 자신을 부러워하고 우러러본다는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노동이 더티 워크가 되려면 '선량한 사람들’, 이른바 점잖은 사회 구성원이 도덕적으로 더럽다고 여겨 그들 스스로는 절대 하려 하지 않는 일이어야 한다. 교도소와 정육공장의 노동, 드론 전투원의 노동, 시추선 잡역부의 노동이 그런 일이다.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사이트 안정성 엔지니어의 노동, 월스트리트 은행가의 노동은 그런 일이 아니다.